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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로그/상해 트래블로그

칼로 바위를 벤다? 중국 쑤저우의 시검석 이야기


견원지간, 불구대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는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고대 중국에 정말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나라가 있었다. 바로 전국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로 이 두나라는 오월동주, 와신상담 같은 고사성어를 남겼을 만큼 서로가 원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다만 사서에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벌어졌던 전재에만 초점을 맞춰 이들 왕과 관련한 세세한 사항은 적혀 있다. 다만 야사나 후일담을 기록한 책을 통해 이들의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중 오왕 합려와 관련된 전설 속의 명검 막야검에 대한 이야기다.

 


보검 매니아, 합려

오왕 합려는 
자신의 무덤 속에 3,000자루의 보검을 함께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유난히 검을 좋아하는 제후였다. 쑤저우(蘇州)는 옛 오나라의 수도로, 합려의 무덤인 호구가 남아있다. 이 호구에는 합려의 무덤 뿐만 아니라 전설의 명검을 시험했다는 시검석(試劍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합려의 무덤 호구에 있는 호구검지. 3000자루의 보검을 함께 묻었다는 장소다.


 

오나라에는 간장(干將)과 막야(莫耶)라는 부부 도장공이 있었다. 합려의 명을 받든 이들 부부는 음양이 조화되고 신령이 강림한다는 시간을 기다려 최고의 조건 아래 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간 각고의 노력을 들여 드디어 자웅 한 쌍인 보검을 만들어 냈고, 이 두 개의 칼은 부부의 이름을 따서 ‘간장검’과 ‘막야검’이라 했다. 간장은 칼을 왕에게 바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아내 막야에게 말했다.


 

“웅검인 간장검은 숨겨두고 자검인 막야검만 왕에게 바치러 가오. 모르긴 해도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거요. 당신은 임신 중이니 혹시 아들을 낳거든 웅검인 간장검을 찾아 반드시 복수하도록 일러주시오. 간장검은 문을 나서서 남산을 바라보는 돌 위 소나무가 서 있는 뒤쪽에 묻혀 있소.”


 

간장이 바친 자검을 받아 쥔 합려는 몹시 기뻐했으며, 또 다른 명검을 만들지 못하도록 간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정사로 여겨지는 사마천의 사기에 오왕 합려는 월왕 구천과의 전투에서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간장의 아들이 복수에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막야검을 시험했다는 시검석. 바위가 너무나 깨끗하게 잘려있어 조금은 의심스럽다.


 

합려는 바위를 잘라 막야검을 시험해 보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 합려의 무덤인 호구에 남아 있는 시검석이다. 칼로 바위를 잘랐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너무나 깨끗하게 잘려있는 시검석을 보면 엉터리라고 치부하기도 애매하다.



▶합려의 무덤 호구를 상징하는 기울어진 탑. 중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