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03 일본에는 외국인만 살던 인공섬이 있었다 (5)
  2. 2008.05.03 일본은 왜 하필 네덜란드와 교류했을까? (3)

우리보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였던 일본이지만, 일본 역시 서양인에게 그렇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철포, 즉 조총을 도입해 일본 전국시대를 끝낸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문물에 가장 트인 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그 뒤를 이어 에도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가장 걸리는 것은 그들의 종교였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신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라는 천주교의 교리는 일본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이질적인 것이었고, 자칫하면 천황제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고심 끝에 일본은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교역 상대를 바꾸게 되는데, 이유는 네덜란드가 종교적인 포교를 배제하고 오로지 무역만 하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시 신생국이었던 네덜란드는 교리에 너그러웠던 신교 프로테스탄트 국가였고, 또한 국가적으로 상업을 중시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포교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당시 네덜란드의 이름은 홀랜드(holand)였고, 이것이 일본식으로 와전되어 오란다가 되고 네덜란드인을 오란다상이라고 부르게 된다. (지금도 월드컵 때 일본 중계를 보면 네덜란드를 오란다로 표기한다.) 이것은 점차 서양인을 총칭하는 말로 굳어졌고 당시 개항장이었던 나가사키에는 서양인의 거리라는 뜻의 오란다자카가 지금도 남아있다.




                   잘 정돈되어 있는 나가사키의 오란다자카. 물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 천주교 신자들이 주동한 시마바라의 난 같은 민란이 일어났던 터라 일본정부는 쉽게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래서 개항장이었던 나가사키에 인공섬을 만들어 일본에 들어오는 네덜란드인들의 집단 거류지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현재 나가사키에 남아있는 데지마.



     당시의 데지마를 재현한 축소 모형. 보는 바와 같이 다리 하나만 연결되어 있는 고립된 섬이었다.

 

일반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 데지마는 섬으로 떨어져 있었고, 육지와 연결된 문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이곳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네덜란드인의 시름을 달래줄 유녀뿐이었고, 일반인이 허락없이 데지마에 사는 네덜란드인과 교류할 경우 엄벌에 처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데지마에 사는 네덜란드인과의 교류는 늘어났고, 이들에게서 해부학이나 외과수술 같은 서양의술이 전해져 후에 난학이라는 서양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외과수술 장면을 기록한 일본화. 일본인들에게는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가사키는 근대 개국 이전 유일한 개항장이었던 만큼 이국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 우리에겐 원폭투하의 이미지가 선명한 나가사키지만 이제 그 이미지를 씻어내고 이국적인 개항장으로서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폐쇄된 데지마의 유일한 출입구. 아래쪽에 보이는 운하가 이곳이 과거에 섬이었음을 증명한다.




                        데지마 곳곳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마크 VOC가 새겨져 있다.




정갈하게 복원되어 있는 데지마의 건물들. 오른쪽에 보이는 초록색 난간이 있는 건물은 데지마 총독의 숙소다.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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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yvillage.tistory.com BlogIcon 라이너스™ 2009.04.03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란다자카에 그런 의미가... 재미있네요^^
    아침부터 재미있는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2. Favicon of http://daqcast.tistory.com BlogIcon beeniru 2009.04.08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 에서 이곳에 관한 프로그램을 몇 차례 방영했답니다. 참고 하세요.. http://www.kbs.co.kr/1tv/sisa/walkworld/vod/1393699_15192.html
    일본 개화의 창, 나가사키 데지마
    http://www.kbs.co.kr/1tv/sisa/histroytour/vod/1422816_19896.html

  3. Favicon of http://browncafe.tistory.com BlogIcon 클라리사~ 2009.04.08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여기 참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던 역사적 배경과 그러면서도 '섬'이라는 형태로 그 특별구역을 유지했던 일본의 방법 등이 흥미로웠고요.



1. 시작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인도를 찾아가는 신항로를 개척하는데 가장 앞장선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희망봉을 발견하고, 인도를 거친 포르투갈의 무역선은 머나먼 동쪽나라 일본에 이르렀고
마침 치열한 내전을 치르고 있던 전국시대에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전해주게 된다.

전국시대에 유입된 조총은 전쟁의 판도를 바꿔버렸고,
수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패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막판에 어처구니 없는 배신으로 전국통일이라는 과실은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돌아갔지만...




다만 포르투갈은 무기만 수출한 것이 아니었다.
조총과 함께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선보이게 되니 이것은 교리 자체가 참으로 신선한 사상이었다.

천황보다 위에 있다는 하나님과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평등사상은 막부에게 있어서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게 되고, 세력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게 된다.

실제로 1637년 시마바라에서는 무거운 세금과 천주교 탄압에 짓눌린 백성들이 일으킨
'시마바라의 난'이 발생했고, 여기에 가담한 천주교 신자만 3만 7천명에 달했다.

결국 진압되긴 했지만, 이를 계기로 에도 정부는 천주교의 위험성을 실감했고
일본 국내에서 천주교를 엄격히 금지하게 되었다.




▶나가사키의 명물이 된 카스테라는 스페인의 스펀지케이크가 전래된 것이다.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에서 만들어 먹던 빵이라고 해서 '카스테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에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처형된 26인 성인순교지.
자세히 보면 두 명의 나이어린 소년도 눈에 띈다.





2. 포르투갈 다음으로 일본에 접근한 네덜란드


천주교에 대한 탄압으로 포르투갈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네덜란드가 접근한다.

당시 네덜란드는 구교와 신교의 대립 속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만든
신생국가였기 때문에 구교였던 포르투갈과는 대립관계였다.

이들은 구교인 천주교의 악습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강압적으로 포교하려고 하지 않았고, 칼뱅의 실용주의를
따라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나라였기에, 상업과 종교를 엄격히 분리한 에도 정부의 조건에 순순히 응해왔다.

하지만 크게 당한(?) 적이 있던 에도 막부는 이들이 혹시라도 기독교를 전파할까 싶어
에도에서 먼 규슈의 어촌 나가사키를 통해서만 교역할 것을 허가했고, 나가사키에
네덜란드인들의 집단 거류지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데지마'다.

데지마는 부드러운 곡선 모양의 인공섬으로 육지와는 달랑 다리 하나로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이 접근할 수가 없었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비록 서양인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나가사키 시민들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당시 네덜란드를
뜻하는 홀랜드(Holand)를 일본어로 발음해 '오란다상'이라고 불렀다.

이 오란다상이라는 명칭은 이후에 코가 크고 피부가 하얀 백인들은 총칭하는 단어로 발전해, 그들이
다니던 거리를 '오란다 자카'라고 부르는 등, 서양인의 대명사가 된다.



 

▶네덜란드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인공섬 데지마.
현재는 주변이 매립되었지만 에도시대만 해도 단 하나의 통로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고립된 섬이었다.






▶데지마에 있는 유적에는 'VOC'라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로고가 남아있다.






▶네덜란드인들이 거닐던 오란다 자카. 반듯하게 정비된 이곳 주변에는 현재 학교와 주택이 들어서 있다.






3.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꽃핀 학문, '난학'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데지마를 중심으로한 네덜란드의 학문은 일본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측량술, 조선술 등 수많은 서양식 학문이 전해졌는데, 이중 일본인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외과수술이었다.
당시의 의학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한방이 전부여서 기껏해야 침을 놓는 것이 전부인
동양의학의 입장에서 실제로 살을 찟고 뼈를 자르는 서양의 외과수술은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것은 데지마를 출입하던 일본 지식층을 통해 전파되었고, 여러 난방의(蘭方醫)들의 노력으로 1774년에는
일본 해부학의 신기원을 마련한 '해체신서'가 발간되기에 이른다.

난학을 통해 축적된 지식은 개화기 시절 새로운 학문을 찾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난학을 공부한
사람 중 탈아입구론을 주장하며 일본 근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같은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기도 한다. 이들이 일본 근대 문명과 메이지 시대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 데지마를 중심으로 서양식 학문이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것은 서양식 외과 수술과 해부학.
에도시대 후기에는 '난학'이라고 해서 네덜란드에서 유입된 서양 학문을 연구하는 학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 1만엔권 앞면을 장식하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화.
난학을 배우고자 열아홉 살에 나가사키로 가서 네덜란드어를 익히고 네덜란드어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
영어도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1860년 막부의 견외사절로 3회에 걸쳐 해외를 여행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했다.
그가 집필한 '서양사정', '학문의 권유' 등의 서적은 메이지 유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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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스키플루스 2009.02.04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 딴지를 걸자면 난학이란건 사실 일본의 근대화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던것같습니다.
    난학의 본질은 네덜란드인과의 통역과 서양의학서의번역이 99.9%였거든요
    그러니까 전근대시기의 일본인들은 보편적으로 네덜란드어를 읽히고 그와함께 의학서를 읽는것으로 난학을 정의하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네덜란드에서 수입했다는 서양의학이라는게 히포크라테스-갈레누스에서 유래한 체액병리학설에 유래되는 전근대의학이었습니다.
    피르효가 시작한 세포병리학에 근거를 둔 근대의학이 아니었다는것이지요 .
    거기에 서양의 사상이나 주의를 담은 사회과학서들이나 인문과학서들은 난학에서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편입니다.
    에도막부의 대외정책은 '쇄국'으로 쇼군을 위시한 최상위층만이 네덜란드와의 제한적인 교류를 할수 있었거든요 그
    기독교(카톨릭뿐만아니라 프로테스탄트)탄압도 연관있는 문제인데다가 막부는 심지어 네덜란드 의학서의 소개조차 금지시킨적이있습니다.
    결국 일본의 역사에서 네덜란드어를 소개하는 난학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시기는 페리가 개항한 1854년 이후의 짧은 기간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전근대시기에 난학이라는 서양학문을 통해서 근대화를 준비하고 조선과 청과 다르게 근대화의 역량을 축적했다라는 인식은 좀 과장된 면이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일본이 근대화해서 제국주의노선을 걸을수 있었던건 서양의 거대 국제자본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견이 있을수도있지만
    일본은 지정학적인관점에서 거대한 국제자본이 동북아시아로 진출해서 영향력을 유지할수있는 전진기지의 위치를 가졌기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기린맥주, 조선소, 제철소등을 일본에 지어주고 메이지유신을 지원했던 토머스 글로버를 (구라바엔이 있지요 꽤 유명하던데)보면 충분히 납득가는 설명이 아닐까 합니다. 사족을 달자면 토머스글로버는 강화도 조약을 발생시킨 '운요호사건'의 운요호를 일본정부에 팔았었지요

    • Favicon of http://tomomo.tistory.com BlogIcon 토모군 2009.02.04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디스키플루스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포스팅한 제가 부끄럽네요 ㅠ.ㅠ 난학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부끄럽지않은 포스팅을 쓸 수 있도록 저도 많이 공부하겠습니다~

  2. Favicon of http://lsmoon47.tistory.com BlogIcon Thogson 2017.07.20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아쉽지만 보이질 않네요. 재미난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