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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로그/테마 트래블로그

단팥빵을 처음 만든 일본 기무라야 소혼텐


얼마전 '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국내 다큐멘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내용이었고, 동영상을 다운 받아서 볼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똑같은 밀이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은 빵이라는 굽는 문화로, 동양은 만두라는 찌는 문화로 바뀌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개항과 더불어 동양에도 서양식 빵이 들어오게 되는데, '돈가스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 빵이 전파된 것은 개항기 훨씬 이전인 에도시대였다. 하지만 적극적인 쇄국정책으로 인해 일반 서민에게는 전파되지 않았고, 네덜란드 무역항이 있던 나가사키 데지마에 살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먹었을 뿐이다. 그러다 메이지유신을 거쳐 군사식량으로서의 빵의 이점이 소개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다투어 빵을 개발하게 된다.

초기에 개발된 빵은 군용이었기 때문에 오래 저장해도 상하지 않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딱딱한 형태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서도 먹는 건빵으로, 당시에는 지름 4~5cm의 둥근 모양이었고 구멍이 뚫려있어 끈을 묶어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빵은 서민들이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외국음식이었다. 군대에는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일반인들은 여전히 빵보다 밥을 선호했고, 서양 효모인 이스트 냄새가 나는 빵은 아무래도 입에 잘 맞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일본인에게 빵을 보급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최초의 단팥빵을 만든 기무라 야스헤에였다.



단팥빵의 탄생

기무라 야스헤에는 원래 도쿄 직업훈련소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저택에서 빵을 굽던 우메키치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빵 만드는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야스헤에는 쉰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소를 그만두고 빵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야스헤에는 1869년 도쿄의 히카게초에 분에이도라는 작은 서양식 잡화점 겸 빵집을 열었다. 하지만 분에이도는 얼마 안가 화재로 불에 타고, 야스헤에는 이듬해 지금의 긴자 5초메로 가게를 옮기고 자신의 성을 따 기무라야라는 이름의 빵집을 연다. 그런데 이 기무라야도 1872년 대형 화재로 불타고, 곤궁에 처한 야스헤에는 돈을 빌려 지금의 긴자 미쓰코시의 목 좋은 자리에 가게를 다시 열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유서 깊은 베이커리 '기무라야 소혼텐'의 시작이었다.

                                            ▶ 미쓰코시 백화점 옆 목 좋은 자리에 있는 기무라야 소혼텐.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빵을 개발하기 위해 야스헤에는 주식이 아닌 '간식용' 빵을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에게 주식용 빵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간식용 빵을 개발하는데 있어 중국식 찐빵에서 힌트를 얻었다. 같은 밀가루 음식이라도 찐빵은 인기가 높았고, 찐빵에 넣는 팥소를 빵에 넣으면 일본인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야스헤에는 이스트 냄새가 나는 빵효모 대신 술누룩을 써서 반죽을 발효시켜 일본술의 풍미를 더하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의 월병에서 힌트를 얻어 중국식 단팥소를 넣어 단팥빵을 만들어 냈다. 찐빵은 식으면 딱딱해지지만, 화덕에서 구워낸 단팥빵은 식어도 여전히 부드러웠고, 씹는 맛, 풍미, 감미가 모두 일본인의 취향에 맞았다.

중국의 팥소와 서양의 빵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팥빵. 따라서 단팥빵은 중국문화와 서구문화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그것이 생겨난 곳은 중국도 서양도 아닌 일본이었다. 장점을 차용해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일본스러운 발명품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무라야소 혼텐. 가운데 패킷을 세워둔 것이 주력상품인 단팥빵이다.


기무라야의 단팥빵을 천황이 맛보다

단팥빵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 손님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하루 판매량이 1만 5,000개에 달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1875년 4월, 야스헤에는 벚꽃 꽃잎을 박은 단팥빵을 메이지 천황의 시종 야마오카 뎃슈에게 보냈는데, 뎃슈가 이 단팥빵을 천황의 식탁에 올리자 천황이 이를 먹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뎃슈는 야스헤에와 검도 친구로 서예에 능했는데, 현재 기무라야의 간판도 뎃슈가 1888년에 써준 것이라고 한다. 
단팥빵은 이후 궁내청에도 납품되었고, 시판용 제품과 구별하기 위해 빵 한가운데가 푹 들어가게 하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소금에 절여 얹기 시작했다. 1897년부터는 시판용 빵도 납품용빵과 모양을 똑같이 만들었는데 즉, 단팥빵의 모양이 현재와 같이 된 것은 일본 천황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1905년부터는 단팥빵이 역에서도 판매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20세기 초에는 기무라야 한 군데에서만도 매일 10만 개의 단팥빵이 팔려나갔고, 빵을 사려면 길게 줄을 서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인기는 현재도 마찬가지로, 긴자에 있는 기무라야는 지금까지 옛날 그대로의 성황을 누리고 있다.



나 역시 도쿄에 갔을 때 기무라야에 들러 단팥빵을 사 먹어 본 적이 있는데, 105엔이라는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격을 상쇄할 정도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일본 먹거리 중에 우리나라보다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3가지 인데, 빵을 비롯한 베이커리류, 우유를 필두로 한 유제품, 그리고 맥주다. 아무래도 개화가 빨랐기 때문에 보급이나 발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김치나 김은 일본에서도 부러워하는 맛을 자랑하기 때문에 일본이 더 낫고 우리나라가 못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단팥빵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남의 좋은 점을 취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본의 창작능력은 좀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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