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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일본에는 외국인만 살던 인공섬이 있었다 우리보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였던 일본이지만, 일본 역시 서양인에게 그렇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포르투갈에서 전해진 철포, 즉 조총을 도입해 일본 전국시대를 끝낸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문물에 가장 트인 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그 뒤를 이어 에도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가장 걸리는 것은 그들의 종교였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신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라는 천주교의 교리는 일본의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이질적인 것이었고, 자칫하면 천황제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고심 끝에 일본은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교역 상대를 바꾸게 되는데, 이유는 네덜란드가 종교적인 포교를 배제하고 오로지 무역만 하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시 .. 더보기
일본에서 건너온 서양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 중에는 서양음식이라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일본에서 건너온 음식인 경우가 많다. 돈가쓰가 대표적으로, 원래는 포크 커틀릿이라는 음식이 일본에 건너와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변형되었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우리가 먹는 돈가쓰가 된 것이다. 돈가쓰란 이름은 돼지 돈豚과 커틀릿의 일본식 발음인 카츠가 합쳐진 말이다. 카레 역시 마찬가지. 인도에서는 화덕에서 구운 빵인 '난'과 함께 먹지만, 일본에 건너와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변형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향신료가 가미된 인도식 카레보다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일본식 카레가 더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전파되었기에 우리가 먹는 카레는 일본식 카레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외에도.. 더보기
원폭희생자에게 종이학을 보내는 이유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는 지하철 대신 노면 전차가 발달한 도시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이곳은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 더보기
카툰여행기 규슈 -나가사키- ▶유후인 관광을 끝내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나가사키까지 가는 버스를 탑니다. 거듭 말하지만,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다음에 자기가 타고 갈 교통편의 시간을 체크한 다음, 그에 맞게 일정을 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후인에서 나가사키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편 없기 때문에 이곳 창구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로 예약한 다음 시간에 맞춰 정류소까지 가야합니다. ▶이제부터 산큐패스를 이용한 새로운 코스의 발굴입니다. 나가사키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유후인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이곳 미치노에키(道の驛)라는 유후인 인터체인지 근처에 있는 조그만 정류소까지 와야합니다. 제 경우에는 창구직원분이 이곳까지 가는 버스를 알려주셔서 얻어타고 왔지만, 버스가 없을 경우 택.. 더보기
규슈여행의 필수품! 산큐패스와 JR규슈레일패스 한 도시에서 관광이 끝나는 도쿄나 오사카와는 달리 규슈는 관광지가 전 지역, 각기 다른 도시에 퍼져 있기 때문에 열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매번 옮겨 다녀야 된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교통비의 부담이 심한 편. 하지만 이런 여행자의 고충을 덜 수 있도록 규슈지역에는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교통패스를 잘 구비해 놓고 있다. 만일 후쿠오카-나가사키나, 후쿠오카-유후인 등 한 도시만을 왕복한다면 패스를 구입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교통비를 지불하는 것이 더 낫지만, 두 도시 이상을 왕복할 경우 패스를 구입해 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자 그럼, 규슈 지역을 여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패스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산큐패스 북부권 JR열차나 전철이 발달한 타지역과는 달리, 규슈는 버스노선이 발달되어 있다. 산큐.. 더보기
원자폭탄.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더보기
일본은 왜 하필 네덜란드와 교류했을까? 1. 시작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인도를 찾아가는 신항로를 개척하는데 가장 앞장선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희망봉을 발견하고, 인도를 거친 포르투갈의 무역선은 머나먼 동쪽나라 일본에 이르렀고 마침 치열한 내전을 치르고 있던 전국시대에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전해주게 된다. 전국시대에 유입된 조총은 전쟁의 판도를 바꿔버렸고, 수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패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막판에 어처구니 없는 배신으로 전국통일이라는 과실은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돌아갔지만... 다만 포르투갈은 무기만 수출한 것이 아니었다. 조총과 함께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선보이게 되니 이것은 교리 자체가 참으로 신선한 사상이었다. 천황보다 위에 있다는 하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