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1.15 원폭희생자에게 종이학을 보내는 이유는? (4)
  2. 2008.05.03 원자폭탄.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 (1)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는 지하철 대신 노면 전차가 발달한 도시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이곳은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 정면으로 걸어가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청동 기념상'이 있다.




▶ 1955년 원폭투하 1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평화 기념상.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 기념상 양 옆에는 종이학을 진열한 조그만 탑이 있다.
나가사키는 물론, 히로시마의 원폭기념공원을 가도 이렇게 전국에서 보내온 종이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학과 원자폭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0년 후, 어린 사다코는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다.
사다코는 병이 낫기를 기원하며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 시작하지만, 미처 천 마리를 다 접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일본 전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만다.
그리고 어린 사다코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전국 각지에서 종이학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 '평화기원'이라는 피켓과 함께 공원 주변에는 매년 일본 전국에서 보내오는 종이학이 장식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감성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해 원폭=종이학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 평화공원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원폭낙하중심지에 다다른다. 사진에 보이는 검은색 기둥 500m 위에서
원폭이 터졌다고 한다. 설명글에는 과거 말뚝으로 표시해둔 폭심지의 자료사진이 남아있다.






▶ 근처에는 사다코와 관련된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캐나다 작가
앨리노 코어가 쓴 작품이다. 실제로 사다코는 죽기 전까지 1300마리의 종이학을 접었지만,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644개만을 접은 채 숨진 것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원자폭탄과 종이학을 결합시킨 것은 일본인 특유의 낭만이 작용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캐나다 작가가 쓴 소설을 일본인 자신들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면은 부각시키기 위해 재빨리 차용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사키는 분명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이고, 지금도 원폭이 떨어진 오전 11시 2분이 되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이 울린다. 우리가 일본인의 낭만에 고개를 끄덕일 이유는 없지만, 다만 이 이야기가
원자폭탄 유적지에 가면 왜 그렇게 종이학이 많이 있는지에 대한 답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다만 현재도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종이학 대신 성금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었습니다.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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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usinessman.tistory.com/ BlogIcon 짝짝 2009.01.16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에는 종이학이아니라 그냥 끈인줄 알았다는 ㅋㅋ
    신기하네요..흠.

    • Favicon of http://tomomo.tistory.com BlogIcon 토모군 2009.01.16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멀리서 봤을 때는 종이학인줄 몰랐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종이학이길래 자료를 찾아봤더니 저런 사실이 있더라구요~

  2. 디스키플루스 2009.02.04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저 공원은 퍽 불쾌합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받았습니다.
    저 공원을 찾는 아이들에게 원폭이 낳은 참혹한 피해를 보여주면서 왜 일본이 원폭을 맞게 되었는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것 같더군요
    일본제국주의가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는 광기에 결국 저렇게 되었다라고 가르치는 자세도 필요한것같은데요
    뭐 수정주의바람이 우익의 지원아래 서서히 부는것을 봐선 그렇게 역사를 똑바로 마주보고 가르치는 일본을 보기는 어려울것같군요

    • Favicon of http://tomomo.tistory.com BlogIcon 토모군 2009.02.04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맞습니다. 일본은 인과응보라는 말을 잊은 것 같더군요. 가고시마에 가면 가미가제 특공대 박물관도 있답니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니 그때도 들려주세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 정면으로 걸어가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청동 기념상'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955년 원폭투하 1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평화 기념상.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 기념상 양 옆에는 종이학을 진열한 조그만 탑이 있다.
나가사키는 물론, 히로시마의 원폭기념공원을 가도 이렇게 전국에서 보내온 종이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학과 원자폭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0년 후, 어린 사다코는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다.
사다코는 병이 낫기를 기원하며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 시작하지만, 미처 천 마리를 다 접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일본 전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만다.
그리고 어린 사다코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전국 각지에서 종이학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 '평화기원'이라는 피켓과 함께 매년 일본 전국에서 보내오는 종이학이 장식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감성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해 원폭=종이학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 평화공원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원폭낙하중심지에 다다른다. 사진에 보이는 검은색 기둥 500m 위에서
원폭이 터졌다고 한다. 설명글에는 과거 말뚝으로 표시해둔 폭심지의 자료사진이 남아있다.






▶ 근처에는 사다코와 관련된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캐나다 작가
앨리노 코어가 쓴 작품이다. 실제로 사다코는 죽기 전까지 1300마리의 종이학을 접었지만,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644개만을 접은 채 숨진 것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차분한 모습이다. 첫번째 원폭투하 도시로서의 상징 때문인지, 히로시마가
온전히 '원폭의 도시' 라는 이미지를 가진 데 비해  나가사키는 원폭보다는 '일본 최초의 개항장',
'일본에서 가장 서구적인 도시' 등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나가사키는 분명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이다.
현재에도 원폭으로 허물어진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도심에 있는 사찰 '후쿠사이지'에서는
원폭이 떨어진 오전 11시 2분이 되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이 울린다.

하지만 '원폭투하 도시'라는 오명(?)을 씻을만큼의 관광지와 문화가 나가사키에 많이 있다.
최초의 개항 도시답게 도시 곳곳에 아기자기한 유럽식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도시 전체가 역사박물관으로
불려질 만큼 완벽한 국제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이제 원폭의 이미지보다는 규슈 최대 관광지로서의 나가사키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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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ceman 2008.10.06 0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없고 불쌍한 우리조선민중들,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민중들만 힘들고, 배고프고, 멸시와 천대의 타국에서 어처구니 없게도 원폭으로 사망. 그런데도 일본은 그런 자신들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미국보고 원폭투하 했다고 지랄하는 나라. 평화공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서있는 조선인 원폭 사망비.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