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는 지하철 대신 노면 전차가 발달한 도시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이곳은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 정면으로 걸어가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청동 기념상'이 있다.




▶ 1955년 원폭투하 1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평화 기념상.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 기념상 양 옆에는 종이학을 진열한 조그만 탑이 있다.
나가사키는 물론, 히로시마의 원폭기념공원을 가도 이렇게 전국에서 보내온 종이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학과 원자폭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0년 후, 어린 사다코는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다.
사다코는 병이 낫기를 기원하며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 시작하지만, 미처 천 마리를 다 접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일본 전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만다.
그리고 어린 사다코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전국 각지에서 종이학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 '평화기원'이라는 피켓과 함께 공원 주변에는 매년 일본 전국에서 보내오는 종이학이 장식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감성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해 원폭=종이학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 평화공원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원폭낙하중심지에 다다른다. 사진에 보이는 검은색 기둥 500m 위에서
원폭이 터졌다고 한다. 설명글에는 과거 말뚝으로 표시해둔 폭심지의 자료사진이 남아있다.






▶ 근처에는 사다코와 관련된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캐나다 작가
앨리노 코어가 쓴 작품이다. 실제로 사다코는 죽기 전까지 1300마리의 종이학을 접었지만,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644개만을 접은 채 숨진 것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원자폭탄과 종이학을 결합시킨 것은 일본인 특유의 낭만이 작용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캐나다 작가가 쓴 소설을 일본인 자신들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면은 부각시키기 위해 재빨리 차용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사키는 분명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이고, 지금도 원폭이 떨어진 오전 11시 2분이 되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이 울린다. 우리가 일본인의 낭만에 고개를 끄덕일 이유는 없지만, 다만 이 이야기가
원자폭탄 유적지에 가면 왜 그렇게 종이학이 많이 있는지에 대한 답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다만 현재도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종이학 대신 성금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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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usinessman.tistory.com/ BlogIcon 짝짝 2009.01.16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첨에는 종이학이아니라 그냥 끈인줄 알았다는 ㅋㅋ
    신기하네요..흠.

    • Favicon of http://tomomo.tistory.com BlogIcon 토모군 2009.01.16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멀리서 봤을 때는 종이학인줄 몰랐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종이학이길래 자료를 찾아봤더니 저런 사실이 있더라구요~

  2. 디스키플루스 2009.02.04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저 공원은 퍽 불쾌합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받았습니다.
    저 공원을 찾는 아이들에게 원폭이 낳은 참혹한 피해를 보여주면서 왜 일본이 원폭을 맞게 되었는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것 같더군요
    일본제국주의가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는 광기에 결국 저렇게 되었다라고 가르치는 자세도 필요한것같은데요
    뭐 수정주의바람이 우익의 지원아래 서서히 부는것을 봐선 그렇게 역사를 똑바로 마주보고 가르치는 일본을 보기는 어려울것같군요

    • Favicon of http://tomomo.tistory.com BlogIcon 토모군 2009.02.04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맞습니다. 일본은 인과응보라는 말을 잊은 것 같더군요. 가고시마에 가면 가미가제 특공대 박물관도 있답니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예정이니 그때도 들려주세요~











▶유후인 관광을 끝내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나가사키까지 가는 버스를 탑니다. 거듭 말하지만,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다음에 자기가 타고 갈 교통편의 시간을 체크한 다음, 그에 맞게 일정을 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후인에서 나가사키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편 없기 때문에 이곳 창구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로 예약한 다음 시간에 맞춰 정류소까지 가야합니다.




▶이제부터 산큐패스를 이용한 새로운 코스의 발굴입니다. 나가사키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유후인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이곳 미치노에키(道の驛)라는 유후인 인터체인지 근처에 있는 조그만 정류소까지 와야합니다. 제 경우에는 창구직원분이 이곳까지 가는 버스를 알려주셔서 얻어타고 왔지만, 버스가 없을 경우 택시를 타고서라도(요금 1,000엔 남짓) 와야 합니다.






▶제가 예약한 버스는 나가사키 역 앞까지 가는 12시 56분 버스였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2시간 마다 한 대 꼴로 버스가 옵니다. (버스가 무려 20분이나 연착해서 아주 조마조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 시간 정도 달려가면 나가사키 역 앞 현영(縣營) 버스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육교 맞은 편에는






▶나가사키 역이 있습니다. 후쿠오카와 가고시마에 이어 규슈 제 3의 도시가 바로 나가사키입니다.








오란다자카(オランダ坂)

▶벌써 오후 5시가 가까웠기 때문에 관광지도를 보고 한 군데만 찝어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간 곳이 오란다자까. 나가사키는 에도 시대 쇄국정책을 펴던 시절 외국인에게 열어 놓은 유일한 무역항으로, 이 길은 예전 주 무역 대상이던 네덜란드 사람(오란다인)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통하던 길입니다.








왜 네덜란드를 오란다라고 부를까?

네덜란드는 다른 이름으로 홀란드(Holland)라고도 하는데, 이 홀란드의 발음이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편한 방식으로 바뀐 것이 ""오란다"" 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국민들은 한국이라고 부르지만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란다자카에 실제로 가보면 여행안내서에서 보던 그런 운치있는 분위기는 나지 않습니다. 이곳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끊임없이 변해왔으니까요. 거리 근처에는 유치원과 중학교가 있어 하교길 아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란다자카를 내려가면 공자묘가 나옵니다. 나가사키에 살던 화교들이 만든 사당으로 매년 공자의 기일이 다가오면 대대적인 행사와 함께 제사를 올립니다. 나가사키에는 네덜란드인도 많이 살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국인도 많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나가사키 짬뽕 등 중국 음식이 발달했습니다.






▶그라바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유명한 카스테라점도 있습니다. 나가사키 짬뽕과 함께 유명한 것이 카스테라인데, 나가사키 어디를 가도 쉽게 살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전통있는 가게에서 사는 편이 더 맛있을 것 같죠. 시식만 하고 안 사고 나와도 괜찮으니 한번 들려보세요.






▶나가사키는 일본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이국적인 풍경이 많습니다. 특히 지금은 나가사키 사루쿠 행사(2006. 4~2006.10) 기간이기 때문에 곳곳에 사루쿠 깃발이 꽂혀 있습니다.








오우라 천주당(大浦天主堂)

▶글로버 정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오우라 천주당이 있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으로, 특히 햇빛이 비치는 날 내부에서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아주 멋집니다. 연인끼리 두 손 꼭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








글로버 정원(グラバー園)

▶글로버 정원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가면 조금 힘들고 사진에 나오는 움직이는 보도를 타고 가는 것이 편합니다.






▶이곳은 또 오페라 ""나비부인"" 의 배경이 된 곳으로 더 유명합니다. 정원 중앙에는 나비부인에서 가장 많은 주연을 맡았던 미우라 타마키(三浦環像)의 동상이 있습니다. 저택의 주인이었던 글로버의 부인이 손님을 대접할 때 나비무늬 옷을 자주 입고 있던 것에 착안해 제목을 ""나비부인"" 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물론 오페라는 모티브만 따왔을 뿐 실제 글로버 부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줄거리-

집안이 몰락하여 기녀가 된 나비아가씨는 미국 선원 핑가튼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핑가튼은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주위에서 재혼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아이와 함께 기다리던 어느날 핑카튼이 탄 배가 입항한다. 그러나 그의 옆에는 재혼한 부인 케이트가 있었고, 모든 것을 알아차린 나비부인은 아들을 게이트 부인에게 맡기고 단도로 자결하고 만다.




...는 비극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인이 애타게 기다리던 남편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요.






▶저택의 주인 토마스 브레이크 글로버의 흉상입니다. 그는 나가사키 개항과 동시에 일본에 와서 글로버 상회를 열고,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 이토 히로부미 등 개화를 부르짖은 일본 젊은이들을 음지에서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일생을 보내고 73세를 일기로 사망한 후 나가사키시 사카모토 국제 묘지에 부인과 함께 묻혀 있습니다.






▶주인이 사망한 후 격동의 세월을 거쳐 현재는 나가사키 시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잘 정비한 탓에 현재는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인 글로버가 살던 저택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간이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때마침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버 정원에서는 나가사키 항구의 멋진 야경이 한 눈에 보입니다.






▶호텔 근처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뽕은 책자에 실린 사진 그대로입니다. 라면과 같은 면에 국물은 라면보다 담백한 맛이 납니다. 같은 짬뽕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짬뽕과는 전~혀 다릅니다. 색깔만 봐도 얼큰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나가사키에서의 첫 날 일정은 마쳤습니다.








일본 26성인 순교지(日本26人聖人殉敎地)&후쿠사이지(福濟寺)

▶이틑날 일정은 나가사키 역을 기점으로 시작합니다. 나가사키 역 근처에 있는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일본 26성인 순교지와 후쿠사이지를 들 수 있습니다. 이곳 성 필리포 교회를 경계로 왼쪽이 순교지, 오른쪽이 후쿠사이지 방향입니다.






▶일본 26성인 순교지는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기에 일본인 최초의 선교자 26명을 처형한 곳입니다. 사진과 같이 그 중에는 2명의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 후 1862년에 로마교황이 이들 26명을 성인의 명단에 올려 주었고,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2년에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26성인 기념관과 성 필리포 교회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교회 건너편에는 대형 관음상이 인상적인 후쿠사이지가 보입니다. 여기에는 또 남다른 사연이 숨겨져 있는데, 이 절이 창건된 1628년은 기독교 박해가 한창 심하던 때로, 누구든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때 이곳에 살던 중국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야만 했는데, 그 대안으로 이 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후쿠사이지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석조물들이 많습니다.






▶후쿠사이지 입구에는 종이 세워져 있는데 매일 11시 2분이 되면 타종을 합니다. 1945년 8월 9일 바로 그 시간에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실제 들어보면 매우 엄숙하게 들립니다.






▶후쿠사이지 주변 언덕은 모두 이런 봉안당(납골당이란 용어는 일본식 표현으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습니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은 이곳에서부터 가운데 오밀조밀한 회색을 띄고 있는 부분이 모두 봉안당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집단 봉안당은 일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메가네바시(眼鏡橋)

▶나카시마 강에는 도쿄 황거에 있는 것과 비슷한 메가네바시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 외에도 13개의 아치형 돌다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 메가네바시입니다.








소후쿠지(崇福寺)

▶메가네바시를 건너가면 수많은 절이 밀집해 있는데, 그 중 이 소후쿠지(崇福寺)는 1629년 복건성 출신의 중국인들이 세운 절입니다. 붉은 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세운 절답게 입구의 붉은 산문이 인상적입니다.








코후쿠지(興福寺)

▶이 절 역시 1620년에 중국 승려가 세운 절로 현재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스와진쟈를 비롯 많은 절과 신사가 부근에 밀집해 있으므로 선사(仙寺) 유람을 즐기시는 분에게는 좋은 관광지가 될 것입니다.








평화공원(平和公園)

▶전차를 타고 마츠야먀쵸(松山町) 역에서 내리면 평화공원이 나옵니다. 평화공원에는 높이 10m의 평화기념상이 있는데, 하늘을 가리킨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하네요.






▶평화기념상 양쪽에는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종이학이 걸려 있습니다. 매년 일본 전역에서 보내 온다고 합니다.






▶근처의 나무에도 종이학이 걸려 있어 애처로워 보입니다.






▶이곳이 원폭 낙하 중심지입니다. 원폭이 떨어지고 난 후 누군가가 말뚝을 박아 폭심 중심지임을 기록해 두었다고 합니다.






▶물론 죽은 사람들은 불쌍하지만,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의 수많은 사람을 괴롭혔던 일본 쪽도 많은 반성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엄숙한 분위기로 자신들만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본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점도 인정해야합니다.






▶평화공원 안에는 원폭이 떨어진 일시가 적힌 기념상이 있습니다. 히로시마가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나가사키가 동년 8월 9일 11시 2분입니다.








데지마(出島)

▶데지마는 에도 막부 시절 유일하게 개항했던 나가사키의 외국인 거류지입니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고 기독교 선교 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막부는 이곳에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만들어 외국인들(주로 네덜란드 인)을 격리 수용시켰습니다. 현재는 주변을 매립시켜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하나의 통로로만 연결된 섬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네덜란드와 무역을 한 이유는 그들이 유일하게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지 말라는 막부의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당시 유럽에서는 구교와 신교 간에 극한 대립을 이루고 있었고, 신교(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기독교의 계율에서 자유로웠습니다. 그리고 신교는 부의 축적을 긍정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일본과 적극적으로 무역에 임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 무역상들이 타고 왔던 범선입니다. 당시는 항로가 개척되지 않아 유럽과 아프리카, 인도와 중국을 거쳐 장장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려 겨우겨우 일본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인들이 전한 학문을 난학(蘭學)이라고 하는데, 그 중 가장 유용했던 것이 의학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이 외과수술을 하는 장면을 일본식 그림으로 남겨두기도 했습니다.






▶데지마 안쪽에는 에도시대의 데지마를 축소한 모형이 있습니다. 앞부분에 보이는 다리가 육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 다리가 현재는 주변이 매립되면서 폐쇄되었습니다. 원래는 이쪽을 통해 유일하게 왕래가 자유로웠던 일본인. 유녀(遊女)들이 출입했다고 합니다.








데지마 와프

▶데지마 맞은 편에는 복합 쇼핑센터 데지마 워프가 있습니다. 바다쪽으로 150m 정도 되는 테라스를 설치해 아름다운 나가사키 항의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물론 밤에 가는 것이 볼 거리가 훨씬 많습니다.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쉬기 좋은 장소입니다. 물론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








나가사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데지마에서 가이드를 해준 할아버지입니다. 제가 찾았던 시기는 나가사키 사루쿠 행사가 한창이라 주민들이 자원봉사 가이드를 해 주고 있었는데, 절반 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저를 붙잡고 숨을 헐떡이시며 열심히 설명해 주시던 열정적인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덕분에 ""그냥 이런 건물이 있구나"" 정도로 끝났을 데지마가 제 머리 속에 확실히 박혔고 책에서도 얻지 못했던 생생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때문에 그 도시나 나아가 그 나라 자체의 이미지가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면에서 일본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시의 대표, 나라의 대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웠습니다. 이런 점은 정말 배웠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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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 정면으로 걸어가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청동 기념상'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955년 원폭투하 1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평화 기념상.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 기념상 양 옆에는 종이학을 진열한 조그만 탑이 있다.
나가사키는 물론, 히로시마의 원폭기념공원을 가도 이렇게 전국에서 보내온 종이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학과 원자폭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0년 후, 어린 사다코는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다.
사다코는 병이 낫기를 기원하며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 시작하지만, 미처 천 마리를 다 접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일본 전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만다.
그리고 어린 사다코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전국 각지에서 종이학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 '평화기원'이라는 피켓과 함께 매년 일본 전국에서 보내오는 종이학이 장식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감성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해 원폭=종이학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 평화공원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원폭낙하중심지에 다다른다. 사진에 보이는 검은색 기둥 500m 위에서
원폭이 터졌다고 한다. 설명글에는 과거 말뚝으로 표시해둔 폭심지의 자료사진이 남아있다.






▶ 근처에는 사다코와 관련된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캐나다 작가
앨리노 코어가 쓴 작품이다. 실제로 사다코는 죽기 전까지 1300마리의 종이학을 접었지만,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644개만을 접은 채 숨진 것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차분한 모습이다. 첫번째 원폭투하 도시로서의 상징 때문인지, 히로시마가
온전히 '원폭의 도시' 라는 이미지를 가진 데 비해  나가사키는 원폭보다는 '일본 최초의 개항장',
'일본에서 가장 서구적인 도시' 등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았다.



나가사키는 분명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이다.
현재에도 원폭으로 허물어진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도심에 있는 사찰 '후쿠사이지'에서는
원폭이 떨어진 오전 11시 2분이 되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이 울린다.

하지만 '원폭투하 도시'라는 오명(?)을 씻을만큼의 관광지와 문화가 나가사키에 많이 있다.
최초의 개항 도시답게 도시 곳곳에 아기자기한 유럽식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도시 전체가 역사박물관으로
불려질 만큼 완벽한 국제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이제 원폭의 이미지보다는 규슈 최대 관광지로서의 나가사키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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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ceman 2008.10.06 0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없고 불쌍한 우리조선민중들,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민중들만 힘들고, 배고프고, 멸시와 천대의 타국에서 어처구니 없게도 원폭으로 사망. 그런데도 일본은 그런 자신들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미국보고 원폭투하 했다고 지랄하는 나라. 평화공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서있는 조선인 원폭 사망비.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