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사에 큰 자취를 남긴 송씨 자매

 

청나라 봉건 왕조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지던 20세기 초, 중국은 혼란 그 자체였다. 중국의 민족지도자 손문孫文의 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혁명정부는 각지에서 난립하는 군벌 세력들로 인해 힘을 결집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런 시기를 틈타 서구열강과 일본이 중국영토를 좀먹고 있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에 큰 자취를 남긴 여걸들이 있었으니, 송애령,송경령, 송미령 송씨 세자매였다.



▶유년시절의 세 자매

 

손문의 친구이자 재정적 후원자였던 송요여宋耀如는 성경과 돈을 인쇄해 부유한 사업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세 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쑨원의 혁명사상을 받아들여 먼저 자기 가정의 모든 봉건주의 잔재를 없애기로 결심하고 세 딸을 청조의 봉건주의 구습에 구애받지 않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생활환경 속에서 성장시켰다.

 

큰 딸 송애령은 13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중국 최초로 미국에서 유학한 여성이 되었다. 뒤이어 1908년에는 송경령과 송미령을 함께 미국으로 유학 보내 세 딸은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게 된다. 이들은 모두 총명하고 미인이었으나 장성한 후에는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장녀 송애령은 당시 은행 재벌이자 중국 최고의 갑부인 공상희孔祥熙와 결혼했고, 둘째 송경령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27살이나 차이가 나는 중국의 국부 손문과, 막내 송미령은 손문의 제자이자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將介石과 결혼했다. 이때부터 ‘첫째는 돈을 사랑했고, 둘째는 중국을 사랑했고, 셋째는 권력을 사랑했다’는 송씨 자매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시작된다.



▶손문과 송애경




▶장개석과 송미령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송경령과 송미령의 대립이다. 송경령은 손문이 죽자 그의 유지를 받들어 여성 혁명가로 변신, 평생 중국 민중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송경령은 손문의 후계자인 장개석이 남편의 이념과 이상을 왜곡하고 중국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권력 야욕에 젖어 있다고 판단하고 그와 대립하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장개석과의 대립은 평생 이어졌으며, 장개석의 아내였던 동생 송미령과의 관계도 여기서 끝을 맺게 된다. 1945년 9월 항일 전쟁에 승리한 후 송경령은 모택동과 손을 잡고 송미령과 그녀의 남편 장개석을 대만으로 몰아낸다. 송경령은 남편 손문의 뜻을 이어받을 정부로 중국 공산당을 택한 것이다.


▶사저에서 모택동을 맞이하는 송경령



▶남편을 도와 대만의 외교에 지대한 공헌을 한 송미령


그 후 송경령은 대륙의 중화인민 공화국에서, 송미령은 국민당 정부의 대만에서 각각 국모로 추앙 받게 되니, 가히 한 집의 자매가 전 중국의 국모를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자매의 활약상은 1997년 ‘송가황조<宋家皇朝>’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파란만장했던 송씨 자매의 역사는 2003년 10월 막내 송미령이 미국에서 사망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세 자매의 일대기를 다룬 '송가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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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나 축구 국가대항전에서 흔히 각 나라별 대표팀의 별칭을 부르곤 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오렌지 군단’이고, 스페인은 ‘무적함대’, 우리나라는 알다시피 ‘붉은 악마’라고 부른다. 그럼 전통적인 축구 강국 독일의 별명은? 바로 ‘전차군단 독일’ 이다. 독일과 전차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일까?




 
 

질풍노도와 같은 독일의 압박축구


세계 최초의 전차가
1차 대전에서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신무기였던 전차는 기밀유지를 위해 ‘물탱크’라고 불려졌고, 나중에는 이것이 그대로 이름이 되어 ‘탱크’라고 불리게 된다. 전차를 가장 먼저 만든 것은 영국이지만 전차를 가장 발전시킨 나라는 독일이다. 단순히 전차를 잘 만들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전차를 운용한 전술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가 독일이기에 2차 대전 이후로 독일은 최고의 전차 강국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특히 질풍노도와 같이 밀어붙이는 독일의 압박축구가 흡사 독일 전차군단의 진격과 같다 해서 붙은 별칭이기도 하다.



▶최초로 전차를 운용한 전술을 개발한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

 



독일 장인정신의 결정체
, 전차


독일의 전차는 기술력에서도 최고를 자랑했다
. 화력과 방어력, 기동력이라는 전차의 3박자는 물론, 승무원의 쾌적함까지 고려한 독일 전차는 독일의 최고 브레인들이 참여한 기술의 집합체였다. 당시 전차 설계에는 오늘날 스포츠카 메이커로 유명한 페르디난트 포르셰박사도 참여했는데, 이외에도 제조업에서 이름을 떨치는 거의 모든 메이커가 회사의 명예를 걸고 전차 개발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를 지향한만큼 걸출한 전차가 많이 생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급을 다투는 전시에 지나치게 꼼꼼한 독일 기술자들의 장인정신은 오히려 장애가 되었고, 러시아가 5대의 전차를 생산하는 동안 독일은 1대의 전차를 생산할 정도로 속도가 떨어졌다. 한 마리의 히드라가 다섯 마리의 저글링을 이길 수 없듯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는 물량이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최고의 전차로 꼽히던 티이거-I




▶독일의 전차기술은 현재까지 명성이 높다. 최고의 3세대 전차라 일컬어지는 레오파트2
 




최고의 기술력은 자동차 산업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BMW, 아우디, 포르셰, 폴크스바겐 등이 모두 독일에 연고를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시에 축적된 전차 기술은 전후 자동차 분야로 옮겨가고, 이 기술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엔진, 최고의 내구성을 갖추는데 활용되었다. 장인의 피를 이어받은 독일인답게 그들 특유의 꼼꼼한 마무리는 품질에 대한 신뢰로 이어져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메이커로 성장하게 되었다.



▶독일차는 무엇보다 단단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전쟁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 타인을 살상하는 전쟁이 건전한 목적으로 발전된 것이 스포츠이고 보면 이 둘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축구 하나만 보더라도 그 나라의 성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순식간에 몰아붙이는 독일의 압박축구가 전차군단의 진격과 같다면, 우리나라의 축구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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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6.24 0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복귀 환영!

 

얼마 전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끄는 드림웍스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3억 달러의 투자를 받게 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토이스토리로 호황을 맛본 이후 작품들의 흥행이 그닥이었는지 그간 자금 융통이 안돼 꽤 곤란을 겪었었다고.




 

이번에 드림웍스에 투자하는 큰 손은 릴라이언스 빅 엔터테인먼트. 돈은 은행에서 받고 릴라이언스 측은 이 금액에 상당하는 매칭펀드를 조성해 투자하는 방식이란다. 그런데 릴라이언스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하다. 알고 봤더니 포브스지 선정 최고 부자 5위에 올랐던 무케시 암바니 회장이 이끄는 릴라이언스 그룹의 자회사였다. 그런데 그는 무려 인도인이었다.

 


, 그런데 인도에 이런 부자가 있었어??

인도를 단순히 인구만 많은 가난뱅이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포브스지가 2008년 선정한 세계 10대 부호 명단에는 인도인이 무려 3명이나 들어가 있다. 물론 상위층만 보고 ‘인도는 부자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정몽준 의원도 겨우 412위인 것을 보면 대단한 일이다. (모두가 예상하는 대한민국 최고부자는 이건희 회장이 아니었다!!)

 

, 그러면 포브스지에 이름을 올린 인도 최고 부자 3명에 대해 알아볼까?

 

 

락시미 미탈 | 미탈 그룹 회장

-포브스 순위 4위. 450억 달러(2008년 기준)



락시미 미탈 회장은 26세에 인도를 떠나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세계 최대의 철강 생산 업체인 ‘아르셀로 미탈’의 회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당시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던 동유럽의 제철소들을 헐값에 인수하여 몸집을 키웠고, 결정적으로 최대의 명성을 떨치고 있던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 제철소를 인수합병함으로써 연간 1억 3천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명실상부한 최대의 제철기업을 만들게 된다. 현재 생산량으로 따져본 세계 철강 회사 순위는 아르셀로 미탈이 1위, 일본의 신일본제철이 2위, 대한민국의 포스코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2위와 3위의 생산량을 모두 합쳐도 아르셀로 미탈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참고로 그녀의 딸인 바니샤 미탈은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돈 많은 상속녀’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케시 암바니 |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

-포브스 순위 5위. 430억 달러(2008년 기준)



그는 사업여정을 보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릴라이언스 그룹을 신사업에 뛰어 들어 그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규모를 키워놓았기 것이다. 섬유산업을 위주로 하던 릴라이언스 그룹은 그가 취임한 후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든다. 전혀 분야가 다른 비즈니스였기에 주위에선 만류했지만 그는 계획을 밀어붙였고, 천부적인 사업감각과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특기를 살려 보란 듯이 성공했다. 이후에는 휴대폰 사업에 뛰어 들어 혁신적인 저가요금 전략을 통해 인도 휴대폰 시장에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킨다. 2007년에는 전세계적인 주가 폭등에 힘입어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을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보통 부자들은 드러내 놓고 돈자랑을 하지 않는 반면 그는 대놓고 사치를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내의 생일선물로 400억 원짜리 에어버스를 선물하고 60층 짜리 초호화 저택을 짓는 것을 보면 과연 최고의 갑부다운 씀씀이를 자랑한다.

 

 

라탄 타타 | 타타 그룹 회장

-포브스 선정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타타그룹은 오랜 전통을 가진 거대 그룹이다. 1858년 무역 회사로 창립한 이후 1901년에는 인도 최초의 대규모 제철소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그 후 10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장은 계속되어 현재는 자동차, 제철, 정보통신, 항공 등 다양한 사업영역에 진출해 있으며 고용인원만 30만 명에 이르는 가히 인도 최대의 기업이다. 타타그룹은 우리나라 외환위기 당시 대우 자동차의 상용차 부분을 인수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 ‘나노’를 출시함으로써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타타 회장은 환화로 250만원에 불과한 나노를 인도의 ‘국민차’로 보급시킴으로써 인도의 열악한 교통 환경을 개선하고 오토바이 사고를 감소시켜 인도 경제 부흥의 기폭제로 삼겠다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타타 회장은 비록 세계적인 부호 명단에는 끼지 못했지만, 인도의 국민 기업으로서 자국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로 인정받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회장 밖에 모르는 우리나라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유명하고 훨씬 더 돈 많은 인도인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인도.. 님 좀 짱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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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llmask.tistory.com BlogIcon 생각하는 사람 2009.06.24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도는 IT강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부자가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ㅎㅎ

  2. Favicon of http://www.edhardysale.org.uk BlogIcon ed hardy clothing 2011.01.20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하고 훨씬 더 돈 많은 인도인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인도.. 님 좀 짱인 듯.


해외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접속해보면 절반 이상이 일본 이야기다. 블로거들이 올리는 정보의 양도 편중돼 있어 다음 블로거뉴스든, 오픈캐스트든 차이가 없다. 죄다 일본 이야기다. 나 역시 포스트의 절반 이상이 일본에 관한 이야기가 차지한다. 중국이나 태국, 유럽 같은 다른 나라 이야기도 있지만 일본에 비하면 비중이 얼마되지 않는다. 왜 해외여행 이야기는 온통 일본이야기 밖에 없는 것일까? 나름대로 유추해본 결과 몇 가지 이유를 추려낼 수 있었다.



1. 거리상 가까워 자주 다녀올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외국은 양쪽을 마주보고 있는 일본과 중국이다
. 그런데 중국보다는 일본이 다니기가 편하다. 여행하기 편리하도록 관광 정보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다 보니 볼거리, 놀거리, 관심거리도 더 많다. 아무래도 가깝다 보니 다녀온 사람도 많고, 사람들은 또 전혀 생판 모르는 나라의 이야기보다는 자기가 다녀왔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히 작년 초까지만 해도 엔화가 약세였기 때문에 일본 여행은 붐을 이루었는데 이때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경우가 많다. 즉 여행자가 보유한 컨텐츠량에서 어느 나라보다 일본이 풍부하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 여행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일상을 전하는 대표적인 블로거 베쯔니님. 이외에도 많은 블로거가 있다.


2.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 상주인원이 가장 많다


일본에 체류하는 유학생 중 한국인이 가장 많다고 한다
. 거리가 가깝다보니 왕래하기도 편리하고, 한국어랑 어순이 비슷한 일본어는 배우기도 쉽다. 한국인 유학생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에서의 일상 소식을 전하게 되고, 자신의 일본 생활을 연재하면서 인기를 얻은 블로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스컴을 통해서야 알 수 있는 소식도 유학생들은 생활하면서 접하다 보니 정보도 빠르고, 별거 아닌 정보도 한국에 소개하면 관심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기자 블로거 다음으로 블로그 활동하기에 좋은 직업(?)이 유학생이 아닌가 싶다. 이런 유학생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일본 관련 포스트는 대부분 베스트에 오른다.

 


              전문적으로 일본의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도 있다. 사진은 <일본을 보는 눈! JP News>


3. 우리나라 사람 자체가 일본에 관심이 많다.


뉴스에서는 매년 일본 수상의 신사 참배 이야기가 나오고
, 독도 영유권 문제는 아직도 논쟁중이다. 한편에서는 일본에서의 한류 소식과 한류 스타 누구가 일본에서 팬미팅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런가 하면 명동에 몰려온 일본인 관광객 이야기가 화제가 된다. 이렇게 우리가 생활하면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듣게 되는 것이 일본 소식이다. 게다가 같은 동양권이라 취향도 비슷하고 정서도 비슷해서 일본에서 유행한 패션은 곧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일본에서 히트한 아이템은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다. 이렇다보니 한국사람은 늘 일본에 관심이 많다. 늘 일본소식을 갈구하게 되고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이슈는 무엇인지 관심이 간다. 즉, 일본 이야기가 판을 치는 요인 중 절반 이상은 우리나라 사람 자체가 일본 소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용준을 보러 공항에 몰려든 일본 팬들. 우리는 어떤 경로로든 일본에 관한 소식을 접한다.
 


이외에도 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세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됐을 것이라 믿는다. 해외여행이 더욱 일상화되면 권역도 넓어지고 취향도 다양해져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정보도 활발히 유통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일본이 대세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도 일정 부분은 담당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이란 나라는 이야기할 거리가 참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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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ndeva.tistory.com BlogIcon 베쯔니 2009.04.14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제 블로그가 ^-^
    전 3번째 이유가 가장 큰것 같습니다~

  2.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4.14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야~
    난 소개 안해주고~
    실망이야~~
    ㅋㅋ

    추천 꾸~욱 누르고 간다~

  3. Favicon of http://toyvillage.tistory.com BlogIcon 라이너스™ 2009.04.14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네요...
    사실 저도 일본 관련 글을 쓸때 메인노출이나
    인기가 제일 많은듯하더군요. 가까우면서도 먼나라라 그런가요? ^^

  4. Favicon of http://flypo.tistory.com BlogIcon 날아라뽀 2009.04.15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맞는말인것 같아요^^
    관심이 많아서.. 그런거겠죠?

  5. Favicon of http://readygotour.com BlogIcon 레디꼬 2009.05.17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관심이 많아도 멀고 비싸면 못가기 때문에..첫번째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인기만화 '짱구는 못말려'를 보면 짱구네 가족이 뷔페에 가자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뷔페를 부패로 잘못 들은 짱구는 세균이 들끓는 썩어가는 모습을 연상하며 괴로워한다. 물론 우리나라 말로 뷔페를 부페라고도 하니 이 장면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짱구는 못말려가 일본 만화란 점을 감안할 때, 먼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뷔페를 부패로 잘못 알았다고 하더라도, 일본어 한자 발음 부패는 우리나라 말과 전혀 어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짱구가 괴로워한 진짜 이유는 뭘까?



실제로 짱구가 잘못 알아 들은 것은 '바이킹'이라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뷔페를 바이킹이라고 하는데, 바이킹이라는 말이 バイキン(黴菌)(바이킹:세균) 즉 세균이라는 일본어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부패라는 한자어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어떻게 번역했을지 번역사가 참 난감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뷔페를 바이킹이라고 한다. 원래 뷔페처럼 여러가지 음식을 늘어놓고 마음에 드는 요리를 골라먹는 습관은 북유럽의 해적이었던 바이킹의 연회 음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유럽에 비하면 아직 야만인이었던 바이킹은 약탈해온 음식을 널판지에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마구 먹고 마셨는데, 훗날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에서 '스모르가스보드[Smorgasboard]'라고 불리게 된다. 이것이 프랑스로 전해져 '뷔페'라고 불리었으니, 지금 우리가 부르는 뷔페는 프랑스어인 셈이다.


[Smorgasboard]에서 smor란 빵과 버터를, gas는 닭이나 칠면조구이를, board는 영어의 board(널판지)를 의미한다고 하니 말하자면 온갖 요리를 널판지에 늘어놓고 먹는다는 원래의 바이킹의 의미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셈이다. 뷔페는 초청하는 사람이나 초청받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연회요리이기도 하다. 한상 가득차려놓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가져다 먹으니 주인 입장에선 서빙하는 일손을 덜 수 있고, 손님 입장에서는 먹고 싶은 요리 위주로 먹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합리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어느나라를 가나 호텔 조식은 뷔페식이다. 많은 손님을 치뤄내야 하는 호텔입장에서는 손님이 올 때마다 상을 차릴 수 없으니 이런 뷔페식이 참 마음에 드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똑같이 뷔페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뷔페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바이킹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다.


           나가사키 컴포트 호텔에서 먹었던 호텔 조식. 이 간단한 식사 역시 바이킹이다.


억지로 추론해본다면 뷔페가 아무래도 프랑스어이고, 세계에서 가장 미식이 발달하고 격식을 차리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보니 아무래도 품위가 떨어지는 바이킹보다는 프랑스어인 뷔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싶다. 군자의 나라로 자부해온 우리나라에서 온갖 음식을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먹는 바이킹이라는 단어는 받아들이기 좀 꺼려지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프랑스에서 한 번 걸러들어온 단어를 쓰는 것이 체면이 좀 서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이런 곳을 '바이킹'이라고 부르면 살짝 이상하다.


그럼 일본의 경우는? 솔직히 일본에서 뷔페를 바이킹이라고 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몽골의 양고기 전골을 일본에선 '징기스칸'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힌트를 얻자면, 요리에 그 나라 민족이나 지도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일본의 호텔 조식은 대부분 '바이킹'으로 부르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놓치지 않으려면 '뷔페'가 아닌 '바이킹'이라고 쓰인 팻말을 따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홋카이도의 명물 징기스칸 나베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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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yvillage.tistory.com BlogIcon 라이너스™ 2009.04.06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유래입니다^^
    좋은 아침되세요~

  2. Favicon of http://endeva.tistory.com BlogIcon 베쯔니 2009.04.06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래서 바이킹이라고 ^-^

    바이킹보다는 타베호우다이를 더 많이 사용하는거 같아요~

  3. 오즈 2009.04.06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4. 2009.04.06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바이킹이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선.
    우리는 뷔페라고 하지만 미국 발음은 또 달라요.
    '버페이'라고 하고 페에 강세주세요. ㅋㅋㅋ
    불어에서 이 말이 왔다고 하셨으니 불어로도 이렇게 발음하지 싶네요?

  5. Favicon of http://flypo.tistory.com BlogIcon 날아라뽀 2009.04.06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바이킹 궁금했는데..ㅋㄷㅋㄷ 잼나게 잘봤어요^^

  6. 루리 2009.04.06 1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는 가타카나 바이킹 뒤에 구 가 붙죠..표기할때.. 그냥 지나가다가 정확한 정보가 게시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써봅니다.

  7. Favicon of http://nizistyle.tistory.com BlogIcon 한량이 2009.04.06 1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 있네요.^^
    바이킨구라는 글씨를 본거 같아요.^^

  8. Favicon of http://moms.pe.kr BlogIcon 함차 2009.04.06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이킹..유래가 있었군요..마구잡이로 접목된것은 아니라 다행이에요..
    그래도 와전되어 사용한다는것이 좀

  9.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4.13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포스팅 좋은걸~~
    나도 열심히~
    아자아자~

  10. Favicon of http://readygotour.com BlogIcon 레디꼬 2009.04.13 1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이킹의 유래.,.^^ 재미있는 글이네요~

  11. 박혜연 2010.01.25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세계에서 뷔페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별로없는나라는 거의 없을겁니다!




빠다코코낫이라는 이름의 과자가 있다. 이름에서 오는 인상이 꽤나 원초적인데 그도 그럴 것이 '버터'와 '코코넛'을 일본식 발음 그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산도 역시 마찬가지. 이것 역시 원래는 영어 '샌드'에서 온 말로, 일본식 표현이다. 언뜻 들으면 영어 같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받아들인다.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일본식 명칭을 우리말로 바꾸는 캠페인이 활발했던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일제시대의 '황국신민'에서 비롯되었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것을 들 수 있다.(물론 이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 중 몇몇 일본식 과자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빠다코코낫'과 '산도'가 그렇게 해서 원래의 영어 명칭인 '버터코코넛'과 '샌드'로 바뀌게 된다.

이 두 과자는 롯데와 크라운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오리온하면 초코파이를 생각하듯이 과자 자체가 회사를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였다. 부모님 세대부터 이어온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장수식품이며 물가인상에 따라 가격만 바꼈을뿐 그 맛은 세대를 이어가며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된만큼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도 선명해, 갑자기 바뀐 영어식 이름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만 주고 말았다. '빠다코코낫'과 '산도'가 어느날 갑자기 '버터코코넛'과 '샌드'로 바뀌다니. 사람들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름만 바꼈을 뿐인 똑같은 과자에 더 이상 손이 가지 않게 된다. 매출 격감에 놀란 두 회사는 고심 끝에 결국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려 놓았고, 사람들은 다시 친숙한 이름을 반가워하며 예전처럼 과자를 사먹게 되었다.

이는 아마 코카콜라의 '뉴코크' 사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뉴코크는 팹시의 맹추격에 위협을 느낀 코카콜라가 소비자의 설문조사와 블라인드 테스트를 바탕으로 코카콜라의 맛을 바꿔 뉴코크라는 새로운 콜라를 출시한 것인데, 마케팅 역사상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새로운 맛보다는 친숙한 맛을 원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 사건이거니와 제품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주아주 위험한 모험이라는 것을 일깨운 사건이기도 하다. 결국 '원래의 코카콜라 맛을 돌려달라'는 소비자의 항의 끝에 90일만에 뉴코크는 원래의 코카콜라로 돌아오고, 이후 다시는 코카콜라의 맛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소비자는 '친숙한 제품'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코카콜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더 새롭고 더 맛있는 제품이 나오더라도 친숙한 것에 길들여진 소비자는 쉽게 자기가 선택하던 제품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과자 이름에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다하더라도, 엉터리 발음의 영어 이름이라도 사람들은 30년 넘게 들어오던 과자 이름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빠다코코낫과 산도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덧붙여, 이런 '일본식 이름'을 가진 과자 이외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과자는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 우리나라와 일본에 동시에 진출해 있는 제과업체 '롯데'의 영향일 수도 있고 혹은 일본에 있는 과자를 카피해서 출시한 우리나라 제과업체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빼빼로나 새우깡이 일본에도 '포키'와 '에비센'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일본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해졌고, www.naokis.net으로 유명한 일본인 블로거 스즈키 나오키씨의 리뷰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스즈키 나오키씨의 블로그 www.naokis.net 2004년 5월 13일자 포스트 '닮았으면서도 다른 것'

물론 노골적인 카피상품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사람들의 미각은 전세계를 통틀어 보편성을 갖는다는 면에서 너무 나쁘게만 보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지 않았다면 아무리 카피상품이라도 이만큼 인기를 누릴 수 없었으리라. 어떤 경로를 거쳤든지 간에 현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과자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굳이 카피상품이라는 논쟁은 지금에 와서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일본식 영어 발음을 그대로 과자 이름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빠다코코낫'과 '산도'는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30년 넘게 사랑받아온 이름을 지금에와서 바꾼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앞서 이야기한 실패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름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비자에게 주는 익숙함이란 것을 '빠다코코낫'과 '산도'를 통해 알 수 있다.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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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yvillage.tistory.com BlogIcon 라이너스™ 2009.03.30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래간만의 포스팅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빠다코코넛 산도에 얽힌 이런 이야기도 있네요.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2. Favicon of http://flypo.tistory.com BlogIcon 날아라뽀 2009.03.31 1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모님 잘지내셨어요?
    가끔왔는데.. 포스팅이 없길래.. 바쁘신가 했어요..^^
    어디 좋은데라도 다녀오셨어요? ^^

    • Favicon of http://tomomo.tistory.com BlogIcon 토모군 2009.03.31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네 일이 좀 있었습니다 ^^
      뽀님처럼 제 블로그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업데이트가 없어서 죄송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열심히 블로그할 예정이니 자주 들러주세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에 김밥이 있다. 맛도 좋고, 간편하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영양가도 있어 범국민적으로 사랑받는 김밥. 그런데 이 김밥의 원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야 원래 우리 음식인 것을 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따질 만도 하지만, 일본은 김말이 초밥을 근거로 한국의 김밥이 일본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간에 왜 이런 '김밥 원조' 논쟁이 벌어진 것일까?

이유는 전세계에서 김을 먹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 단 두나라 뿐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중국은 물론 서양인들은 전혀 김을 먹지 않는다. 이런 문화 차이 때문에 웃지 못할 사건도 발생한 적이 있다. 2차대전 중 해안 지방에 있던 일본의 한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김을 따서 배식한 적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전범재판이 벌어졌을 때 포로 학대의 증거로 이 '검은 종이'를 강제로 먹였다는 것이 죄목으로 채택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다른 나라에서는 김을 먹는다는 것이 생소했던 것이다. 세상에서 김을 먹는 단 두 민족이기 때문에 김을 재료로 하는 김밥 논쟁은 어쩌면 '김 종주국'을 자처하는 자존심 싸움인지도 모른다. 그럼 김밥에 대한 한일 양국의 주장을 살펴보자.



일본의 초밥 노리마키에서 유래했다는 설
김밥이 일본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일본의 노리마키를 드는 사람이 많다. 노리마키는 '김말이'라는 뜻으로 초밥집 메뉴 중 하나인데, 실제로 김밥의 모양과 흡사하다. 들어가는 재료는 소금에 절인 오이나 참치. 오이를 넣으면 규리마키, 참치를 넣으면 데카마키라고 한다. 이외에도 연어알이나 계란을 넣기도 하며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단, 우리나라 김밥과는 다르게 대게 한가지 재료만 넣는다. 또한 간장에 찍어먹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김밥과는 다르다. 다만 밥을 김에 만다는 발상과 모양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김밥이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의 고유 음식이었다는 설
우리나라에서는 김밥의 기원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 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밥을 김에 싸서 휴대하면서 먹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김밥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있던 곳은 남해안이었고, 이곳은 지금도 질 좋은 김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니 신빙성이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김밥으로 속이 없는 '충무김밥'을 들 수 있는데, 충무김밥이 나온 곳이 경남 통영이었으니 꼭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서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말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  



충무김밥의 유래
충무김밥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중 하나는 해방 이후 남해안의 충무(현 통영)항에서 고기잡이를 나가는 남편이 고기 잡느라 식사를 거르고, 술로 끼니를 대신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남편이 안쓰러워 김밥을 만들어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아내가 싸준 김밥은 잘 쉬어서 못 먹게 되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밥과 속(반쯤 삭힌 꼴뚜기무침과 무김치)을 따로 담아 주었는데 그 후에 다른 어부들도 점심 및 간식을 밥과 속을 따로 담은 김밥으로 해결하게 된 데에서 유래된 향토 음식이다. 이후 꼴뚜기무침이 구하기 쉬운 오징어로 대체되어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밥과 노리마키의 공통점
김밥과 노리마키에 들어가는 밥은 식초와 소금을 넣어 달달하게 밑간을 한다. 일본의 초밥이 밥에 밑간을 하기에 일본 원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들어 일본의 초밥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밥의 유래를 주먹밥으로 놓고 봤을 때, 밥에 밑간을 한다는 점 하나만으로 일본 유래설을 주장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주먹밥을 먹을 때, 따로 반찬 없이 주먹밥 하나만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주먹밥에 간을 했었기 때문이다. 밑간을 한 주먹밥은 한국과 일본에 공통적으로 존재해왔다.

           한국의 주먹밥은 대체로 둥근데 비해 일본 주먹밥은 삼각형인 것이 특징


재료로 가늠해보는 현대 김밥의 탄생시기
김밥에는 단무지, 햄, 오뎅, 계란, 시금치, 오이, 당근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이중 단무지는 일본의 것이고 햄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다. 단무지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나 일제강점기 시절일 것이고, 햄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을 통해 본격적으로 들어왔음을 감안할 때, 햄과 단무지가 어우러진 현재의 김밥은 해방 후에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이 점점 바빠짐에 따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역이나 길가 노점에서 대용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점차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분식점 메뉴로 자리잡게 된 것이 현재의 김밥이다. 





과거야 어쨌든 현재의 김밥은 한국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 김밥의 원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딱 부러지게 결론내릴 수는 없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한국일 수도 있고 일본일 수도 있다. 다만, 원조가 한국이든 일본이든 지금의 김밥은 한국 음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넣은 맛있는 김밥을 파는 나라는 없다. 서양의 포크 커틀릿을 일본 음식인 돈까스로 발전시켰듯이, 옛날의 김말이 밥을 햄과 단무지, 다양한 고명을 곁들여 현재의 김밥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 김밥을 먹을 때 김밥이 자기나라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100엔 정도 밖에 안하는 저렴한 가격에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다.

원조를 따지기 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스시가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안롤이라는 미국 음식으로 바뀌었듯이, 김밥 역시 일본에서 건너왔건 한국에서 만들어졌건 현재 김밥이라 불릴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다. 원조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발전시킨 것은 우리나라이기에 한국 음식이라고 결론을 내려도 좋을 듯 싶다.



                다음 메인 화면 종합 뉴스 영역에 노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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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 2009.03.03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이 "신라시대 왕의 폐백품목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3. 1 2009.03.03 1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초밥의 기원이 한국이라는 주장은 제가 한 적이 없습니다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다만 1740년의 수문사설에 보면 잡티를 뜯고 참기름을 발라 구워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구운김과 형태가 비슷합니다. 때문에 현재의 김과 그 모양새가 비슷하리란걸 추측할 수 있는것이고 말입니다. 때문에 1740년의 수문사설이 판김의 형태를 한 김이 당시의 조선시대에서 먹었다는걸 알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일본으로 부터 전해진 것인지 이미 조선에서도 먹어 왔었는지 증명할 자료가 없다는 겁니다. 저 위에도 적었듯이 123님에게 판김이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래된 근거를 알려 달라고 하기도 했구요.

  4. 1 2009.03.03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건 123님의 주장과 제 주장의 충돌이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한 부분인듯 싶습니다. 저는 원시적인 김밥의 형태를 인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리의 형태는 처음에는 무척 단순합니다. 위에 적었던 면의 기원도 지금으로서는 수제비에 가까운 형태이고 말입니다. 원시적인 빵도 단지 밀가루 덩어리를 구워낸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빵이 아닌건 아니죠. 지금도 빵이라고 불리고 있고, 원시형태의 김밥도 지금 충무김밥이라는 형태로 내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5. 1 2009.03.03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먹는 양식도 하나의 전파라고 볼 수 있다는게 제 견해입니다. 지금 하는 누들로드가 많은 도움이 되지 싶고 말입니다. 그리고 판김을 일본이 먼저 먹었다고 하셨는데 거기에 대한 근거가 없다면 제가 납득하기 힘든게 현재 상황입니다.

  6. 1 2009.03.03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말합니다. 저는 충무김밥의 형태가 일본에 전해졌다고 하는게 아닙니다. 당시 일본과 조선의 민간 교류가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김을 싼 휴대성이 필요한 요리는 뱃사람들같은 하층민이 먹던 요리라고 추측하고 있기에 그것이 문화적 경로로 전해졌다고보지 않습니다. 즉 현재 저는 충무김밥의 형태와 김초밥을 어떤 경로로든 특정짓고 있지 않습니다. 원래 이글은 현재의 한국 김밥의 기원에대해 논하고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전 그 기원을 충무김밥의 형태를 기원으로 보되 일본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판김에 대해 말씀하고 싶으시다면 일본에서 한국에 전해졌다는 근거를 제게 제시해 주셔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김을 잘라 구워먹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으니 그것이 과연 원래 있던 것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전해진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으니 말입니다.

  7. 1 2009.03.03 1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판김의 제조 근거에 대해서는 기록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야기를 이 쯤에서 정리하고 내일 도서관에 가는김에 한번 찾아볼 생각이지만 제시를 해 주신다면 제 주장을 당장 수정할 수 있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8. 1 2009.03.03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들로드 할 시간이 다 되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좋은 이야기 나누어 감사합니다.

  9. 1 2009.03.03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일본어를 못합니다;;;

  10. 1 2009.03.03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료를 제시해 주셔서 방금 인조이재팬으로 돌려 보았습니다. 일본이 김양식을 시작힌 시기가 조선의 양식시기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판김 제조기술이 조선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의문점이 남습니다.

    • ㄴㄴ 2009.03.04 0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03g1434a을 읽어보세요.

      쉬운 검색으로도 우리의 양식이 더 앞선다는 증거가 됩니다.
      아무래도 서양사전(서양사전 한국판이죠)은 국가 위상상 거의 모든 일을 일본의 편을 들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오는 군요.

  11. 1 2009.03.03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초의 면은 면을 자르지 않고 그저 손으로 비벼 길게 늘인, 즉 길고 가느다란 수제비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현재의 면의 개념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주먹밥을 본다면, 안에 속이 없어도 주먹밥, 있어도 역시 주먹밥이죠. 원형은 속이 없는 주먹밥일 테고 말입니다. 안에 소를 넣고 휴대한다는 발상은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보지만, 속이 없다고 해서 김밥이 되지 않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12. 1 2009.03.03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좋은 이야기 나누어서 감사합니다.

  13. ㄴㄴ 2009.03.04 0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여익의 일화에서 김 한 첩이란 표현과 임금(현종)이 이른 '종이같은 것'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판김이 아니면 어떻게 종이 같을까요?
    현 상태의 김밥의 기원은 모릅니다.
    그러나 김의 기원은 한국이 맞고
    심지어 스시의 기원도 일본이 아니라 동남아 지역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혹시 샤브샤브의 기원을 일본으로 알고 있는지? 혹은 몽골로?(몽골은 반은 정답이 되겠네요.)
    우리의 경우 문헌 상의 기록상 삼국시대로 올라갑니다.
    신선로가 그 잔재지요.
    전투식을 투구에 불려먹은 고대 기마민족의 흔적입니다.
    몽골의 경우 그 전통 대로 전투에 응용했던 것이고.
    동아시아 기마민족 공통의 음식이고 그 기원이 어느 곳인지 모르고 기록상은 우리나라가 가장 오래됐습니다.
    일본은 기마민족이 아니니 전래한 것이겠죠.
    일본이 자기식으로 잘 가공해 파는 것은 그들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맹목적인 찬양으로 근본까지 바꾸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14. 안상연 2009.07.02 0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ㄴㄴ님 댓글을 읽고 다시 한번 배웁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속이 다 시원하네요!
    아아아아님은 음식 원조 때문에 싸운다고 우습다고 하셨는데 개인 음식점끼리도
    자기가 원조라고 싸우다 민사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담습니다.
    절대 우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아아아님 같은 분이 많아질 수록 김치가 기무치 되기 쉽겠죠.

    ㅁ님은 일본이 전통을 인정한다고 하셨는데 그건 님이 잘못 알고 계신겁니다.
    유입된 음식도 그 나라 문화에 따라 변형되죠. 그러다 보면 당연 원형에서 멀어져 시치미 떼기 좋죠.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한국이 더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국장처럼 들여온 나라를 아예 이름에 넣었죠.
    그에 반해 일본은 커틀렛을 처음엔 그대로 부르다가 카츠레스로 지금은 돈까츠로 부릅니다.
    문화권이 엄연히 다른 서양은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같은 문화권이라면 문제는 다릅니다.
    곧바로 일본 문화로 둔갑이 됩니다.
    현재 홍콩에서 재패니즈 피클이라고 버젓이 김치를 기무치란 이름으로 팔고 있습니다.
    일본은 김치 유입 전에 배추조차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만든 음식점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음식점 전통을 지키는 것이기에 자신을 위한 거죠.
    전통을 급조한 것은 메이지 유신 때, 조선 문화권에서 서양 문화권으로 넘어가면서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죠!
    한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을 급조하긴 커녕 있던 전통도 말살 되었습니다.

  15. aaaaa 2010.07.14 1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김밥의 기원은 복쌈으로 음력 정월 보름(상원날)에 김이나 마른 취에 밥을 싸서 먹는 풍속입니다.
    자주 먹었던건 아니고 정월보름이나 해먹었던걸로 지금처럼 유행하는 음식은 아니었죠.
    취 ·호박고지 ·고비 ·고사리 ·도라지 ·가지 ·시래기 등을 가을에 말려두었다가 볶아서 먹고, 밥을 싸서 먹거나, 김을 구워서 쌌는데, 개성 등지에서는 들깻잎으로 싸서 먹기도 한다.
    복쌈은 여러 개를 만들어 그릇에 노적 쌓듯이 쌓아서 성주님께 올린 다음에 먹으면 복이 있다고 하는데, 때로는 복쌈 쌓듯이 돌을 노적처럼 마당에 쌓아놓고 풍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상원날에는 이 밖에 명이 길다 해서 국수를 먹기도 하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말려놓은 나물을 삶아먹는 등의 풍속이 있다.
    통으로 길게 해서 먹는게 아니었고 당시는 복쌈(현재 보쌈정도로)의 크기이지 현재먹는 김밥통판으로 한게 아니라고 해서 김밥의 원조는 일본이라는건 말도 안됩니다. 가식과 날조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이 조사해서 진실을 보도록 하는게 살아가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16. 잘아시네여~ 2016.10.26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밥의 원조를 따지자면, 초밥의 원조 부터 살펴 봐야 됩니다. 초밥의 원조는 사실 실크로드 시대에서 왔다는게 학자들 사이에서 통상적으로 지배적이었습니다. 원래 초밥은 식해에서 출발이 되었답니다. 식해는 우리가 아는 그 식혜가 아니라 어류를 밥알에 삭혀 저장 해놨다가 나중에 밥알과 어류를 같이 꺼내 먹는 식해였었는데, 저장기간이 길다 보니 과거에는 1년정도는 지나야 먹을 수 있었답니다. 거기서 흘러들어와 일본까지 전파 된건데, 오늘날의 일본 초밥은 교토 지방에서 상권 무역이 발달 되다 보니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끼니가 필요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단하고, 적은양으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식해인데, 워낙 발효 기간이 길다 보니 저장고의 한계로 그때 그때 만들어 간단히 빨리 먹을 수 있는 영양가 있는 끼니를 모색 하다가 밥알에 식초를 섞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발전한게 오늘날의 일본 초밥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김밥은 이런 식해와 같은 성질과 김한장 붙혀 놓은게 여직까지 였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김밥의 경우는 우선 김이 일반 생활에 널리 반포 되는 시점이 언제였냐 하면, 정종 때 였습니다. (이성계 아들 때) 고로, 임진왜란 훨씬 이전이란 말이 되는거죠~ 김에 밥을 싸 먹는 음식 문화는 반포 되기 이전부터 였다는 겁니다. 김이 왜 김일까여? 그건 정종때 검은 종이를 진상하던자의 이름을 성만 알고 함자는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金" = 김으로 이름이 부쳐졌다고 합니다. 고로 김밥은 우리나라의 고유의 음식이었고, 특히 남서해안 중심으로 바지락등 해조류/어패류가 풍부하게 자라난 덕에 나온 특유의 일반 음식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워낙 우리나라가 일본치하에 있던 덕에 좀 쇄뇌 당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로 열등의식/패배주의로 원래 갖고 있던 원기 조차도 제대로 발휘 조차 못 했었던 세월이 불과 100년도 안되었습니다. 일본은 문화를 통해서 주입력이 대단한데요~ 사실 그들은 전통 조차 짓이겨 버리고, 새로운거에 환장한 인간들입니다. 정통/전통 이런거 업습니다. 도자기/무예/병법/놀이/음식/화풍 부터 해서 자기들이 직접 새로운걸 창조 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모두다 모방이었지요~ 그 섬나라가 살아 남을 방법은 오로지 무역이나 외교를 통해서 남의 것을 들여와 자기들 입맛에 맞춰 만들어 내는 방법 이외에는 새로운것을 창조 해내지 못한 나라였지여~ 그런데 이 녀석들이 워낙 생존 본능이 강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부쳐 더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지라 일본이 마치 창조의 나라로 포장되었지여~ 사실 그들은 기술보다는 상상력 하나는 풍부하긴 하지여~ 하지만, 창조적 상상력은 예나 지금이나 부재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얘들이 뭘 모르고, 일본~ 일본~ 하는데 어쩌면, 애니매이션/만화 덕 때문에 그런건지~ 이제는 웹툰이 일보능로 역수출 하고 있다져? 일본에도 사기꾼이 있고, 우리나라도 사기꾼이 있기 마련인데~ 일본 사기꾼이 말하는건 다 믿고, 한국인이 진언하면, 다 뻥이라고 말하는 세태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17. 이건머 2016.11.06 1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역사만말하고 그러니 한국꺼 이러는거네.
    김의 기록역사는 일본이 2백년은 더 앞서요.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지..
    김의 기록을 알아보려면 한중일 모두 살펴보아야해요.

  18. 지나가다 2017.04.09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휴 그냥인정할건 인정해야지 김을 싸서 먹는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았겠지
    그놈의 신라시대 복쌈.... ..보나마나 여러가지재료 싸서먹었을텐데 그걸 어떻게 현재 김밥이라고 할수있다나
    문제는 지금 식초를 간을하고 말아서 잘라먹는게 문제야 이것은 일제시대이후부터 생겨난형태인데
    게다가 단무지하고 햄이 들어가있는것부터 이미 전통음식으로 칭하는것도 무리고 말이야
    현재는 한국음식이지만 기원은 노리마끼라는것을 인정해야지

  19. ㅇㅇㅇ 2017.04.21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는말인데 그러면 일본식 야키니꾸도 일본음식으로 봐야됨? 삼겹살 이런거 빼고

  20. BlogIcon ㅇㅇ 2018.02.24 0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무김밥은 광복 이후에 생긴거라 기원이랑 아무 관계없고, 일본에서 초밥 들어온 이후에 생긴게 김밥이라 일본에서 유래한게 맞다.

    한국에서 김으로 다른 음식을 싸먹었던 문화가 있던 건 사실이지만 김밥이랑 그 어떤 관계도 찾을 수 없고, 음식 재료만 다를 뿐이고 일본에서 들어온 초밥 조리법을 완전히 따라했다면 그건 초밥의 한국식 로컬라이징이지 조리법 차용이 아니다.

    김밥의 출발은 일본에서 유래했지만 현재에 김밥은 우리나라 음식이 확실한데 굳이 기원을 비겁하게 감출필요가 있나? 그냥 인정하고 먹으면 되지.


그저께 귀한 편지를 한통 받았다. 발신지는 사가현 관광연맹 한국사무소. 얼마전 응모한 사가현 관광 홈페이지 평가에 고맙게도 2등에 당첨되어 1만원권 상품권 5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이 이벤트를 알게 해 준 베쯔니님께도 감사드린다.

사가현 이외에도 일본에는 각 현별로 관광연맹이 조직되어 있어 JNTO(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의 지원 아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거리가 가까운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한글로 만든 홈페이지는 물론, 팜플렛, 쿠폰에 이르기까지 사용자의 입장을 배려한 홍보물을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번 사가현 관광 홈페이지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상품권을 받은데 대한 보답 차원에서 사가현에 대한 소개를 해보기로 한다.

 

최근 오픈한 사가현 관광 홈페이지. 한국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사가현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 http://121.78.119.245/)



사가현은 어떤 곳인가?

사가현은 규슈 북북에 위치한 곳으로 후쿠오카현과 나가사키현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위치상의 이점으로 인해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선출병의 전초기지로 쓰였으며,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수많은 도공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삼평으로, 현재도 일본 도자기 문화의 시조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또한 미인탕으로 유명한 우레시노 온천과 다케오 온천이 유명하며 일본 선사시대 유적인 요시노가리 유적이 있어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명소가 산재해 있다.

다만 주변의 후쿠오카나 나가사키, 오이타현과 비교해 관광객이 흥미있어 할 만한 시설이 부족한 편이라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만큼 개발될 가능성도 많은 곳이며, 특히 한일해저터널 공사의 일본 기착지인 가라쓰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가현이지만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사가현 관광 홈페이지에 방문하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 도자기 문화로 유명하다.


사가현에 있는 가라쓰나 이마리, 아리타는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끌려온 많은 도공들이 이곳에 정착했으며, 지금도 이삼평의 후손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곳에 도자기 마을이 형성되게 된 이유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이주를 거부한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당시에 최신 기술이었던 도자기 제작법이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정부가 강제적으로 이주를 막은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원래 조선인 도공들은 고령토를 재료로 도자기를 제작했는데, 처음에는 일본에서 고령토와 같은 좋은 흙을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삼평이 사가현 이즈미야마에서 도자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흙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도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 일본 3대 미인탕, 우레시노 온천이 있다.

사가현을 대표하는 온천으로 일본에서도 역사가 깊기로 유명한 곳이다. 우레시노 온천이라는 이름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옛날 진구(神功)황후가 전쟁에서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는데, 지친 두루미가 온천에 날개를 담그고 나서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부상당한 병사를 온천에 넣어보니 병사의 상처가 치유되었고, 이를 본 황후가 기뻐하며 "우레시이(기쁘다)" 라고 말했던 것이 우레시노 온천의 기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류마티스나 신경통, 위장병에 효과가 있기로 유명하고, 온천에서 만든 온천탕 두부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품이다.



3. 한반도와의 교류를 알 수 있는 유적이 많다.

사가에는 일본의 선사시대인 야요이시대의 유적인 요시노가리  역사 공원이 있다. 특히 한반도를 경유한 벼농사 문화를 받아들인 후 마을의 취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어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다. 이곳 요시노가리 유적은 중국의 삼국시대에 쓰여진 위지왜인전에 수록된 당시 일본의 취락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대륙과 떨어진 일본의 문화발전 속도가 얼마나 더뎠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출병하는 군사가 집결했던 곳으로, 인구 20만 명이 넘는 마을이 생겼던 곳이다.(이름은 같지만 일본 본토에 있는 나고야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를 침략할 전초기지로 쓰였던 곳이라 좋은 인상이 남지는 않지만, 전쟁 후에는 이곳을 거점으로 한일간의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한번쯤 눈여겨 볼 만한 곳이다.




4. 오징어 활어회와 온천탕 두부 등 사가현만의 먹을거리를 갖추고 있다.

오징어 활어회는 가리쓰시의 명물로, 주문하면 살아있는 오징어를 그물로 건져 재빠르게 조리해 내온다. 투명한 채로 접시에 올려진 오징어 활어회는 맛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정도. 회로 먹고 남은 부분은 튀김으로 즐길 수도 있다. 온천탕 두부는 우레시노 온천의 온천수를 사용한 탕두부로, 온천의 알칼리 성분이 작용하여 부드러운 맛을 낸다. 우레시노 온천을 피부 뿐만 아니라 몸 속으로 즐길 수 있는 일품요리로 우레시노 온천의 여관과 요리점에서 맛볼 수 있다.



이렇듯 사가는 역사와 관계된 유적이 많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관광으로 즐길만한 거리는 많지 않지만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방문해봐도 좋은 곳이다. 지금은 조용한 곳이지만 만일 한일해저터널이 뚫린다면 사가를 거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단체도 관광 인프라 구축에 힘을 기울였으면...

최근 엔화의 강세와 함께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명동에 있는 모 백화점의 명품 매장은 일본인이 싹쓸이 해가고 있다니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내수진작에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쇼핑과 한류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관광 인프라는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관광공사 오지철 사장의 '자아비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는 2월 24일 인터뷰에서 "최근 엔고로 일본인이 마구 들어와서 한국 관광 잘 된다고요? 아닙니다", "1970년에 작성한 관광백서에 나오는 한국 택시 문제가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며 외국인에 대한 수용 태도, 국제화지수 등 관광인프라면에서 바꿔야 할 점이 많다고 꼬집었다. 일본이 관광선진국이 된 것은 일본 자체가 가진 매력 이외에도 외국인이 사용하기 편한 교통시스템, 사용자 위주의 홍보와 인프라를 들 수 있다. 그래서 외국인이 관광하기 가장 편한 나라로 일본이 꼽히고 있다. 지금 예를 든 사가현처럼 우리나라도 각 자치단체가 관광 인프라 구축에 노력을 기울여 5년 후, 10년 후에는 동북아 관광 거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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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국내 다큐멘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내용이었고, 동영상을 다운 받아서 볼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똑같은 밀이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은 빵이라는 굽는 문화로, 동양은 만두라는 찌는 문화로 바뀌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개항과 더불어 동양에도 서양식 빵이 들어오게 되는데, '돈가스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에 빵이 전파된 것은 개항기 훨씬 이전인 에도시대였다. 하지만 적극적인 쇄국정책으로 인해 일반 서민에게는 전파되지 않았고, 네덜란드 무역항이 있던 나가사키 데지마에 살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먹었을 뿐이다. 그러다 메이지유신을 거쳐 군사식량으로서의 빵의 이점이 소개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다투어 빵을 개발하게 된다.

초기에 개발된 빵은 군용이었기 때문에 오래 저장해도 상하지 않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딱딱한 형태였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서도 먹는 건빵으로, 당시에는 지름 4~5cm의 둥근 모양이었고 구멍이 뚫려있어 끈을 묶어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빵은 서민들이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외국음식이었다. 군대에는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일반인들은 여전히 빵보다 밥을 선호했고, 서양 효모인 이스트 냄새가 나는 빵은 아무래도 입에 잘 맞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일본인에게 빵을 보급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최초의 단팥빵을 만든 기무라 야스헤에였다.



단팥빵의 탄생

기무라 야스헤에는 원래 도쿄 직업훈련소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저택에서 빵을 굽던 우메키치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빵 만드는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야스헤에는 쉰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소를 그만두고 빵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야스헤에는 1869년 도쿄의 히카게초에 분에이도라는 작은 서양식 잡화점 겸 빵집을 열었다. 하지만 분에이도는 얼마 안가 화재로 불에 타고, 야스헤에는 이듬해 지금의 긴자 5초메로 가게를 옮기고 자신의 성을 따 기무라야라는 이름의 빵집을 연다. 그런데 이 기무라야도 1872년 대형 화재로 불타고, 곤궁에 처한 야스헤에는 돈을 빌려 지금의 긴자 미쓰코시의 목 좋은 자리에 가게를 다시 열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유서 깊은 베이커리 '기무라야 소혼텐'의 시작이었다.

                                            ▶ 미쓰코시 백화점 옆 목 좋은 자리에 있는 기무라야 소혼텐.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빵을 개발하기 위해 야스헤에는 주식이 아닌 '간식용' 빵을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에게 주식용 빵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간식용 빵을 개발하는데 있어 중국식 찐빵에서 힌트를 얻었다. 같은 밀가루 음식이라도 찐빵은 인기가 높았고, 찐빵에 넣는 팥소를 빵에 넣으면 일본인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서 야스헤에는 이스트 냄새가 나는 빵효모 대신 술누룩을 써서 반죽을 발효시켜 일본술의 풍미를 더하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의 월병에서 힌트를 얻어 중국식 단팥소를 넣어 단팥빵을 만들어 냈다. 찐빵은 식으면 딱딱해지지만, 화덕에서 구워낸 단팥빵은 식어도 여전히 부드러웠고, 씹는 맛, 풍미, 감미가 모두 일본인의 취향에 맞았다.

중국의 팥소와 서양의 빵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팥빵. 따라서 단팥빵은 중국문화와 서구문화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그것이 생겨난 곳은 중국도 서양도 아닌 일본이었다. 장점을 차용해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일본스러운 발명품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무라야소 혼텐. 가운데 패킷을 세워둔 것이 주력상품인 단팥빵이다.


기무라야의 단팥빵을 천황이 맛보다

단팥빵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 손님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하루 판매량이 1만 5,000개에 달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1875년 4월, 야스헤에는 벚꽃 꽃잎을 박은 단팥빵을 메이지 천황의 시종 야마오카 뎃슈에게 보냈는데, 뎃슈가 이 단팥빵을 천황의 식탁에 올리자 천황이 이를 먹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뎃슈는 야스헤에와 검도 친구로 서예에 능했는데, 현재 기무라야의 간판도 뎃슈가 1888년에 써준 것이라고 한다. 
단팥빵은 이후 궁내청에도 납품되었고, 시판용 제품과 구별하기 위해 빵 한가운데가 푹 들어가게 하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소금에 절여 얹기 시작했다. 1897년부터는 시판용 빵도 납품용빵과 모양을 똑같이 만들었는데 즉, 단팥빵의 모양이 현재와 같이 된 것은 일본 천황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1905년부터는 단팥빵이 역에서도 판매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20세기 초에는 기무라야 한 군데에서만도 매일 10만 개의 단팥빵이 팔려나갔고, 빵을 사려면 길게 줄을 서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인기는 현재도 마찬가지로, 긴자에 있는 기무라야는 지금까지 옛날 그대로의 성황을 누리고 있다.



나 역시 도쿄에 갔을 때 기무라야에 들러 단팥빵을 사 먹어 본 적이 있는데, 105엔이라는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격을 상쇄할 정도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일본 먹거리 중에 우리나라보다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3가지 인데, 빵을 비롯한 베이커리류, 우유를 필두로 한 유제품, 그리고 맥주다. 아무래도 개화가 빨랐기 때문에 보급이나 발전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김치나 김은 일본에서도 부러워하는 맛을 자랑하기 때문에 일본이 더 낫고 우리나라가 못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단팥빵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남의 좋은 점을 취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본의 창작능력은 좀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 메인 페이지 카페/블로그 영역에 노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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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yvillage.tistory.com BlogIcon 라이너스™ 2009.02.23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그렇군요... 저도 그런점은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카레라이스, 돈까스 등등.^^
    잘 보고갑니다. 관련 트렉백 하나 걸고가요^^

  2. 니콘 2009.02.23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무라야소 혼텐 ----> 아니죠

    굳이 띄어쓰자면

    키무라야 소혼텐 이라고 해야죠.

    아님

    키무라야 총본점 이라고 하시던가

  3. BlogIcon 뭔소리야 2009.02.23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팥빵은 한국꺼다.

    한국말이자나. 병신아... 단팥빵이 일본꺼냐?

    일본문화 99% 는 한국꺼다.

    모르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하는것처럼

    일본문화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라는것을 먼저 알아야지.

    일본칼은 백제칼이고

    중국글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가르쳐줬고.

    도자기 만드는법. 불교... . 불교는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

    불교는 문화고... 예술이다. 불교하나만 해도... 조각.그림....여러가지 문화가 담겨있자나.

    그런 불교를 한국이 일본놈에게 가르쳐줬다.

    단팥빵은 한국꺼다.

  4. BlogIcon 뭔소리야 2009.02.23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만...

    빵이 왜? 일본꺼냐?? 어이없네.

    빵은 서양꺼다. 영국이라고 해두자.

    제발좀 정신좀 차려 병신아.

    • Syaz 2009.02.23 1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모든 빵종류를 다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단팥빵 하나만 이야기 하는거잖아요
      제발 글좀 똑바로 읽어보센-_-

  5. 오즈 2009.02.23 1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주는 톡싸는 카*가 더 좋은데..ㅎㅎ
    글도 추천 한방 합니다..^-^

  6. Yurica 2009.02.23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양에서는 빵에 팥을 안 넣었을까요. 궁금하네요.
    잘 읽었어요.
    무개념엔 무관심이 약입니다.^^

  7. Favicon of http://joogunking.tistory.com/ BlogIcon joogunking 2009.02.23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양 음식인 빵에 왜 단팥이 들어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글로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 좋아요 2009.02.23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한 단팥빵에 이런 일화가 숨겨져있었다니 잼나네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단팥빵을 보지만 당시는 얼마나 획기적이었을까 생각하면 정말 감탄밖에 안나옵니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이런걸두고 말하는거겠죠?
    인스턴트 라면도 지금은 흔히 먹지만 어떻게 이런게 처음 만들어졌을까 생각하면
    참 무궁무진한 상상들이 떠오릅니다.
    어디서 최초에 발생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응용하고 발전시키냐가 더 중요하다는걸 깨닫습니다.

  9. 말티즈 2009.02.23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개인적으론 우리 입맛엔 우리 나라에서 만든 빵이 제일 맛있더군요.. 외국 나가서 먹어본 빵들은 빵의 종류는 우리보다 훨씬 더 다양했지만 너무 달거나 아니면 허브 냄새 (or 무슨 약냄새 같기도 하고) 같은 것들이 아주 강하거나 해서 입맛에 맞지 않더라구요.. 빵/과자는 국산이 더 맛있는 것 같아요..

  10. 단팥빵 2009.02.23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 갔었는데, 기대에 못미치는 맛이었어요.^^;;;
    직전에 와플을 먹고 바로 먹어서 그런진 몰라도..ㅜㅜ
    차라리, 마네켄 와플을 먹는 걸 추천합니다.^^;;

  11. swallow 2009.02.23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 일본스타일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맵고짠것은 못먹거든요.) 저는 기무라야소혼텐의 단팥빵이 너무 맛있어서 종류별로 1개씩 5개 사서 그날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맨 첨에 갔다가 친구랑 먹고 반해서 담에 동생이랑 또 놀러가게 되었을때 그때도 또 사서 동생이랑 덴샤에서 먹던 기억이 나네요^^

  12. 제빵과 나온사람! 2009.02.23 15: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c대학 제빵과 나온사람입니다. 빵을 생각하니 전 역사보다 다른생각을 같고 있습니다. 우리한국 빵가게 사정이 매우 열악합니다. 전대학 빵과 나온학생이라도 결국 한반에 학생중 90%정도는 빵과 무관한 다른취업자리를 찾아 나갑니다. 일도 힘들뿐더러 개인시간도 없고 돈도 경력자라도 생각보다 작습니다. 빵하는 사람 대부분에 세벽이나 아침7시에 출근해 빵을 만드는데...밤 10,8시 퇴근하고요. 돈도 경력자라도 그렇게 많이주지 않습니다...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빵을 안하고 다른것을 나가게 되는것입니다.자기 하루개인 사생활 1시간조차도 없습니다.쉬는날 한달에 2번,4번인되도 있고요. 일하는 도중에 잠시 쉬는것도 없습니다.밥 다 먹엇으면 바로 일해야합니다. 제빵사들이 싫어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빼빼로,발렌타이데이,화이트데이 잘팔리는 피크 일주일전날 죽어납니다. 그때부터 미리팔아먹을거 더많이 만들고 대뷔를하죠...지금도 제빵사 일하면서 내가 왜 이직업을 선택했을까??후회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하루 빨리라도 제빵협회 회장 김영모씨...제빵사들도 대접받는 세상이 들도록 어떻게 힘을써야합니다. 제빵사들 스패튤라,깍지가지고 외형보기 좋은케익, 믹싱기 3,4개잡고 동시에 돌리고 귀소리만 듣고 글루텐 잡혔는지 알아네는 화려한 기술은 좋으나...우리한국 제빵사들 그만한 노동의 대가 대접을 못받습니다.

  13. Favicon of http://flypo.tistory.com BlogIcon 날아라뽀 2009.02.24 0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모님 메인 축하드려요.. 앞으로 자주자주 다음메인에 노출시켜주세요..ㅋㅋ


뉴욕의 맨하탄, 홍콩의 침사추이, 상하이의 와이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항상 눈에 띄는 건물들이 있다. 그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진 건물, 바로 특급호텔이다. 하룻밤 묵는 비용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초호화 럭셔리 호텔. 상류사회의 로맨스가 느껴지는 이들 특급호텔 시장에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힐튼 호텔과 쉐라톤 호텔이다. 비단 하룻밤 묵어가는 곳이 아니라 파티는 물론 휴양, 카지노, 놀이시설까지 갖춘 종합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세계적인 호텔 체인. 먼저 힐튼 호텔에 대해 알아보자.  



 

힐튼 호텔 Hi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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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호텔체인인 힐튼호텔은 호텔도 유명하지만 늘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헐리우드의 이슈메이커 페리스 힐튼으로 더욱 유명하다. 힐튼호텔은 1919년 창업자인 콘래드 N. 힐튼이 텍사스주(州) 시스코에서 매입한 모블리호텔이 그 기원으로, 1929년에 힐튼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법인이 되었다. 창업후 미국 최고의 호텔 체인으로 승승장구하던 힐튼 호텔은 경제공황의 여파를 맞아 잠시 주춤하게 된다. 경제공황으로 인한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1931년 최악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으나 윌리엄 L. 무디 2세를 비롯한 여러 투자자들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그 후 투자자였던 무디 형제들의 사업체와 합병하여 내셔널호텔을 설립하였다.




힐튼은 1934년 5개 호텔로 다시 독립하게 되고 1938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서 프랜시스 드레이크호텔(Sir Francis Drake Hotel)을 인수하였다. 1942년 비벌리힐스에 본사를 세웠고, 그후 멕시코를 비롯하여 해외로 확장하였으며 1948년에는 계열사로 힐튼호텔스인터내셔널(Hilton Hotels Internatio)을 설립하였다. 1949년에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 카지노를 개발함으로써 도박업에도 진출한다.

1980년대 말은 힐튼 호텔 최고의 호황기로 미국 내 270개 이상의 호텔이나 여관이 힐튼의 이름으로 운영되었으며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 나간다. 1991년에는 미국 전역에 걸쳐 리조트를 개발하여 분양하는 힐튼그랜드버케이션스(Hilton Grand Vacations Company)를 설립하였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있는 오헤어힐튼(O'Hare Hilton)을 인수하였다. 1993년에는 시저스월드, 서커스엔터프라이지스와 협력해 캐나다에 윈저카지노를 개발하였다. 2001년 현재 힐튼콘래드라는 브랜드 이름 아래 미국 41개 주와 7개국에서 약 7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총자산 91억 4000만 달러, 매출액 28억 2700만 달러이며 본사는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다. 한국에는 서울특별시경주시에 힐튼 호텔 체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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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호텔이라면 단연 이분!! 
패리스 힐튼
 

힐튼 호텔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패리스 힐튼이다. 세계 최고급 호텔 체인 '힐튼'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 실제 상속녀는 패리스 힐튼, 니키 힐튼 자매이지만 엄청난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언니 패리스 힐튼이 단연 유명하다. 애완용 강아지에게 수천만원을 들여 치장시키고, 수백만 달러짜리 승용차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 힐튼 호텔의 부자 상속녀라는 신분 자체만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각종 기행이다. 난잡한 파티를 즐기는 것은 물론, 남자친구와의 정사 비디오 유출,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도소 수감 등 전세계 연예지면을 달굴 뜨거운 기사거리를 매번 제공해 주기 때문에 파파라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배우, 탤런트, 가수, 모델 등을 섭렵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한 그녀가 톱스타를 능가할 정도의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은 이런 기행 때문이다. '뚜렷한 직업조차 없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패리스 힐튼. 얼마 전 국내방한 때는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작년에는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백악관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단순히 주목받고 싶어하는 사고뭉치인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 늘 신섬함을 주는 이슈메이커인지는 개인이 판단할 몫이지만 상업적으로는 확실히 성공한 듯. 각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당해서 상속받는 재산에는 아직 일절 손대고 있지 않고 현재는 자기 수입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쉐라톤 호텔 Sher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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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과 함께 세계 호텔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쉐라톤의 역사는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공황으로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하락하던 1937년, 부동산 회사를 설립한 어니스트 헨더슨과 로버트 무어가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 첫 쉐라톤 호텔을 개장하면서 쉐라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두 창업자는 1939년 보스톤에 3곳의 호텔을 열었으며, 이후 미국 동부 해안 전역에서 급속히 확장을 거듭해나갔다. 쉐라톤의 급속한 성장과 성공은 호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 이후 쉐라톤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첫 호텔 체인이 되었다.

1949년에는 두 군데의 캐나다 호텔 체인을 매입하면서 해외로 진출하게 되는데, 1960년 대에는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으로 진출하였고, 1965년에는 드디어 100번째 쉐라톤 호텔을 개장하게 된다. 또한 1985년에는 세계 최초로 중국 만리장성에 쉐라톤 호텔을 개장하기도 한다. 이 후 발전을 거듭하여 1980년대 미국 및 전세계에 약 400개에 이르는 호텔망을 구축하게 되고 1967년 복합기업체로 유명한 ITT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계열 브랜드도 계속 확충해 나갔는데, 1995년에는 중급 수준의 저렴한 가격대의 브랜드인 '포 포인츠(Four Points)' 호텔을 런칭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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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스타우드 호텔즈 & 리조트 월드와이드가 ITT 쉐라톤을 흡수합병하는데, 쉐라톤 브랜드 흡수합병건을 두고 힐튼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나, 스타우드가 힐튼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결국 쉐라톤은 스타우드 계열사로 편입되게 된다. 쉐라톤 호텔은 포 포인츠 브랜드 이외에도, 세인트 레지스, 더 럭셔리 컬렉션, 엘러먼트, 르 메르디앙, W 호텔즈, 알로프트, 웨스틴 호텔즈 & 리조트 브랜드를 가지고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급 호텔이 쉐라톤 계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1977년으로, 한국의 워커힐과 프렌차이즈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쉐라톤 워커힐을 발족시켰다.




맺는 말
사실 패리스 힐튼의 명성(?)에 가려 힐튼 호텔이 그렇게 대단한 호텔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힐튼이라는 이름이 좀 촌스럽게 느껴진 면도 있고 하도 오래전부터 '힐튼 호텔'이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역사가 좀 오래된 구닥다리 호텔이라고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괜히 호텔 재벌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우리나라 대표 재벌인 삼성도 삼성 자체보다도 삼성이 거느린 삼성전자, 삼성 SDS, 삼성중공업, 삼성테크윈, 호텔 신라에 이르기까기 쟁쟁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기에 무서운 것이 아니겠는가? 힐튼 호텔 역시 힐튼이 거느린 호텔업, 도박업, 리조트 사업에 관한 쟁쟁한 계열사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이점은 쉐라톤 역시 마찬가지다. 
뒤를 받쳐주는 숨은 공신들(?)이 전세계에 포진하고 있기에 오늘날 힐튼과 쉐라톤은 전세계 호텔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이 신혼여행 가서 묵게될 호텔도 분명 이 둘중 하나가 될 것이다.



 

Posted by 토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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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flypo.tistory.com BlogIcon 날아라뽀 2009.02.18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힐튼호텔 너무나 고급스러 보여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