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보다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자의 수는 전체인구의1%도 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채 200년이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가장 열성적인 신자를 가진데 비해 일본의 기독교는 신기하리만치 인기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도 기독교 문화가 융성하던 시기가 있었다. 에도시대의 정책적인 기독교 말살로 인해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분명 일본에도 기독교 문화는 존재했고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규슈에 있는 나가사키현은 일본 기독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서양 무역선이 가장 먼저 닿았던 곳이 나가사키의 히라도였고 이들을 따라온 선교사들이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회라 이름지은 카톨릭 선교 단체는 신교인 프로테스탄트가 퍼져가는 유럽 대신 동남아 식민지라는 새로운 선교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나가사키 지역을 거점으로 해 일본 열도 전체를 카톨릭 신자의 나라로 만든다는 원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시작된 선교활동은 효과를 거두어 짧은 세월 동안 규슈 전체에 걸쳐 30만 명이라는 신자를 확보하게 된다.
인도와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닿았던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아시아 기독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유독 규슈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발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규슈의 중심지였던 히고(肥後. 지금의 구마모토)의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가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서행장으로 잘 알려진 고니시는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와 투톱을 이룬 선봉장이었다. 하지만 둘은 워낙 사이가 나빠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아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린 경우도 많았다. 전쟁이 끝난 후 고니시 유키나가는 히고의 영주로 부임하게 되고 크리스천 다이묘의 비호 아래 이곳의 백성에게도 기독교가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는 동군과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를 받드는 서군으로 나뉘어 내전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도쿠가와 진영이 승리함에 따라 도요토미 편에 섰던 고니시는 몰락하게 된다. 후임으로 규슈를 지배하게 된 가토 기요마사는 라이벌이었던 고니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기독교 신자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가토의 영향 아래 있던 인근 영주들도 이에 동참한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가토 기요마사. 현재는 구마모토성으로 유명하다.
탄압에 시달리던 기독교 신자들은 구마모토 옆에 위치한 시마바라 반도에서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시마바라의 난’이다. 비록 기독교 신자들이 주동하긴 했지만 영주의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들도 가담했기에 시마바라의 난은 일본 중세의 대표적인 농민 봉기로 기록되고 있다. 신통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16세 소년 아마쿠사 시로가 이끌었던 시마바라의 크리스천군은 결국 에도 정부군에 의해 모두 전멸하고, 이 전란을 끝으로 융성했던 기독교 문화도 점차 쇠퇴하게 된다. 전국시대부터 에도막부가 성립되기까지는 채 10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일본의 기독교는 불꽃처럼 일어났다 사그러들었다.
시마바라 반란군을 이끌었던 16세 소년 아마쿠사시로 도키사다
신통력이 있었다는 전설로 인해 모 게임에서는 악역 보스로 출연하기도 했다.
에도시대의 정책적인 탄압으로 인해 일본의 기독교는 그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고 말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일본 기독교의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나가사키의 기독교 유적은 하나씩 복원되었다. 히라도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 사세보의 미우라 천주교회, 나가사키의 26성인 순교비 등이 바로 일본의 옛 기독교 문화를 알려주는 소중한 유적이다. 단순히 예쁜 건물이라는 감상보다는 이런 일본 기독교의 역사적인 배경에 눈을 돌려보는 것도 나가사키 여행을 풍성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지.
서양 무역에 있어 창구가 되었던 히라도를 상징하는 건조물, 門
사세보역 근처에 있는 미우라 천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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