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

내가 친구 임신사진 보고 한숨지은 이유


아침에 출근하면 항상 맨 먼저 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싸이월드인데요.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시대에 ‘아직도 싸이월드야?’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마 저 말고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물론 저도 지금은 페이스북이 싸이월드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끊을 수 없는 것이 첫째로 네이트온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화면이 켜지기 때문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것이 ‘업데이트된 일촌’입니다. 싸이는 하지 않지만 예전 일촌들이 사진을 올리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지요. 본인은 업데이트도 안하면서 남의 사진만 보는 일종의 ‘눈팅족’이라고 할까요? ^^;;

오늘은 거기서 작년에 결혼한 동갑내기 친구의 임신사진을 봤네요. 물론 저는 남자고 그 친구는 여자입니다. 첫 직장에서 같이 일하다가 그 친구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고, 저는 서울에 남았지요. 갑자기 작년에(아마 재작년 말일지도 모릅니다. 가물가물하네요) 부산으로 내려간지 얼마 안되어 결혼한다고 연락이 와서, 조금 급하게 결혼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었는데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삭사진이라고 하나요? 예전엔 연예인들만 찍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일반인들도 많이 찍나봐요.  출산하기 한 두 달 전 배가 한창 불렀을 때 기념으로 많이들 찍는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본 친구는 참 예쁘게 나왔더군요. 원래 예쁘기도 하지만 임신한 모습으로 단아한 미소를 띄고 있는 친구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꼭 이런 사진이었죠. 사진은 얼마 전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공개된 윤손하의 만삭사진>

잠시 여운을 느끼고 창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친구의 행복은 저에게 원인 모를 두려움으로 전파되더군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내 나이 30대 초반,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과연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우리 아버지는 30살에 나를 낳았는데, 나는 아직 결혼은 커녕 애인도 없으니…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을 생각해 보니, 결국 한숨만 나더라구요.


결혼 미루는 최대 이유는 결국 경제적인 문제

결혼에는 많은 돈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결혼 비용은 부모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으로 되어 있죠.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이 십 수년 간 ‘계’를 붓기도 하죠.) 하지만 집은 남자가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그간 모아놓은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죠. 적어도 방 두 칸 짜리 전세 아파트는 얻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어야 결혼이 가능합니다. 평균적으로 말이죠.

어떤 형편 좋은 집의 남자는 “차는 내가, 집은 부모님이…’라는 식으로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대다수의 한국 남자들은 첫 직장 잡고부터 결혼할 때까지 신혼집 전세금 마련을 위해 이를 악물고 돈을 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은 대충 뻔합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가령 27살에 취업해 31살에 결혼한다고 치면,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을 수 있는 돈은 아마 5~6000 정도일 겁니다. 4000일 수도 있구요.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하지요. 바로 직장입니다.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느냐에 따라 모을 수 있는 돈도 차이가 납니다. 대기업이라면 아마 같은 기간에 훨씬 많은 돈을 모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하는데 있어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자보다는 훨씬 고민을 덜 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탄탄하고 어느 정도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자는 돈도 돈이지만, 선뜻 결혼까지 할 생각하려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일하는 직종, 혹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결혼’까지 하기에는 좀 불안불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결혼에 따른 혜택도 적습니다. 요즘 삼성카드 광고 중에 ‘삼성에 다니지는 않지만 삼성인의 혜택을 누린다’라는 카피가 있더군요. 대기업의 지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문구입니다. CJ 같은 데 다니면 남부러울 것이 없죠. 외식은 빕스, 영화는 CGV, 철마다 나오는 휴가비, 경조사비, 인센티브, 그리고 자녀 학자금까지.

저는 지금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식비나 교통비, 기름값 정도면 생활비가 해결됩니다. 나머지 돈으로 저축도 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다릅니다. 양가 부모님 용돈에 경조사 부조, 그리고 꾸준히 들어가는 생활비 등등. 아마 지금 쓰는 돈의 3배는 더 들어갈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친구의 만삭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저는 찍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저런 소소한 비용까지 더해지면 아마 저축은 꿈도 못 꿀 겁니다.
 

                           <이런 행복한 가정, 여자만의 꿈은 아닙니다. 남자도 꿈꿉니다.>

생활비 걱정 없이 임신사진 찍을 그날이 오기를...

예전 어느 신문에서 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을 판단하는 잣대 중 하나가 ‘퇴근 길 피자 라지 사이즈 정도는 큰 부담 없이 사갈 수 있는 정도’라고 하더군요. 피자를 사기에 앞서 ‘이걸 한판 사면 생활비에서 뭘 줄여야하고…’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중산층이 아니란 말입니다. 앞의 사례에 대비하자면 결혼을 하려면 만삭사진 정도는 ‘큰 부담 없이 찍을 수 있는 정도’는 되야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생활비 걱정 없이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 친구의 만삭사진이 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각자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겁니다. 아마 친구 역시 사진을 찍는 대신 다른 부분에서 지출을 줄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사진을 통해 본 친구의 생활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습니다. 결혼을 못한 자신감 결여를 엉뚱한 곳에다 갖다 붙여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구요. 하지만 저 같은 생각을 하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아마 적지 않을 것입니다. 생산활동인구의 97%가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통계를 보면 말이지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남녀가 많다고 하지요?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마 많은 남자들이 저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좀 더 돈을 모으고, 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그러고 난 후에 자신있게 결혼하자고 말이죠. 생활의 궁핍함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죠.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왕 늦은 결혼, 이왕이면 좀 더 좋은 조건에서 하고 싶다는 거 백 번 이해합니다. 만삭사진 한 번 찍는 거 가지고 생활비 걱정하는 구질구질한 삶은 저라도 싫습니다.

아침부터 주절주절 말이 많았네요. 결국 해답은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열심히 일하고, 좀 더 열심히 저축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모를 씁쓸함은 남네요. 이상 30대 초반 남자의 푸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