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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잡년행진, 슬럿워크에 남자들이 불쾌감 느끼는 이유


폭우가 쏟아지는 지난 토요일, 광화문 세종로에서는 슬럿 워크(Slut Walk), 집회 주최측의 명칭으로는 <잡년행진>이 펼쳐졌습니다. ‘슬럿’은 성매매여성(창녀, 매춘부)를 뜻하는 영어단어로, 이날 시위는 ‘야한 복장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가부장적 관념을 반박하는 항의성 퍼포먼스였는데요.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모인 약 100여 명의 여성들과 이에 동조하는 남성들은 비키니 수영복이나 탱크톱, 가터벨트 등 이른바 대놓고 ‘야한 옷차림’을 하고 단체로 춤을 추며 온몸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세종로에서 펼쳐진 ‘잡년행진’. 이미지출처:노컷뉴스>

<잡년행진>이 끝난 후,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등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비교적 상세하게 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기사를 실었고, 논조 또한 긍정적인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보는 상반된 시각은 주말 이틀 동안의 짧은 시간에 수백 개의 댓글을 통해 팽팽하게 대립했는데요. 저 또한 많은 생각을 했고, 대다수의 남성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에 동의하며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취지는 모두가 동감, 판결에 대한 해석이 엇갈려


제가 생각할 때, 이번 <잡년행진>의 취지는 대다수가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동감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시위는 올해 초 캐나다 경찰이 여성들에게 배포한 안전수칙이 발단이 되었는데요.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이 ‘슬럿(매춘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학 강연 도중 경찰관이 말한 이 발언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의미로 미국, 영국, 호주, 인도 등에서 슬럿워크 시위가 일어났고, 한국에서도 지난 토요일 <잡년행진>이란 이름으로 시위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슬럿워크의 취지는 모두가 공감합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다수의 가해자는 남자고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성범죄 판결 시, 여성의 ‘야한 복장’이 범죄에 어느 정도 원인제공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성폭행범의 형량이 감형되거나 정상이 참작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행실을 똑바로 해야지’라는 말과 함께 피해 여성을 성폭행의 원인 제공자로 만드는 경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요. 이런 가부장적이고 어느 모로 보나 남성위주인 해석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범죄에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의 판결은 누가 봐도 억울합니다.

 

                        <고대생 성추행 사건에 항의해 슬럿워크 1인 시위를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취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이날 시위에서 “내가 옷을 야하게 입건 말건 그것은 나의(여성의) 자유고, 내가 그런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나를 성적 소비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잡년행진>의 주장에는 이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내용을 볼까요?

그는 “슬럿워크는 남자 대 여자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쓰레기의 대결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남자는 성범죄자를 같은 남자의 카테고리에 두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내가 벗었다고 네가 만질 수 있는 건 아니야” 기사 인용)

시위 참가자 김아무개(22)씨는 “옷차림이 어떻든 그건 여성의 자유인데 일부 남성은 야한 옷차림을 하면 그걸 성적 소비의 대상으로 본다”며 “본능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야하게 입은 여자에게 그 본능을 마음대로 부려도 된다는 건 아주 몰지각한 의식”이라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내가 벗었다고 네가 만질 수 있는 건 아니야” 기사 인용)

즉, 성범죄 판결에 여성의 행실이나 옷차림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투로 영향을 주면 안된다는 것은 맞는데, 그를 통해 ‘야한 옷차림’을 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을 여성이 강제하고, 규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시위를 바라보는 많은 남성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근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너손 논쟁의 연장선, 남성들이 불쾌감 느끼는 이유


여성이 어떻게 옷을 입든, 그것을 남성들의 시선으로'야하게', 혹은 '남성을 유혹하려고' 입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제 남자들은 자신의 의식까지 여자들에게 맞춰야 되는거야?? ㅋㅋㅋㅋ 미치겠다..

(오마이뉴스 “내가 벗었다고 네가 만질 수 있는 건 아니야” 기사 댓글 中)

위에 인용한 댓글이 이번 시위를 불쾌하게 바라보는 남성들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이 야한 옷차림을 하면 당연히 남자로서 눈이 가는데, 그렇게 보지도 말고 응큼한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 사례를 볼까요.

저도 지하철에 앉아서 가는데 사람들이 많은 상태에서 제 앞에 서 있던 여성분이 하의실종(?) 패션으로 있는데 정확히 시선이 하반신에 가는 겁니다. 당연히 내 눈은 거기에 (그 높이에, 위치에) 달려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너무 불편하고 불쾌해서 시선을 위로 올렸는데 그 여성분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근데 제가 살면서 이토록 여자를 때리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뭐 잘못한 게 있어서 그랬으면 몰라도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것도 아닌데 억울해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오마이뉴스 “내가 벗었다고 네가 만질 수 있는 건 아니야” 기사 댓글 中)

이번 <잡년행진>을 다룬 기사에서 대체로 많은 호응을 얻었던 댓글은 ‘입을 권리가 있으면 볼 권리도 있다’는 류의 글이었습니다. 여성이 야한 옷을 입는 것이 자유면, 그것을 볼 권리도 자유이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거리 같은 공공장소에서 남성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는다고 해서 기분나쁘거나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성의 ‘입을 권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남성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편의 권리가, 다른 한 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여성전용칸을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면 이렇게 논란이 크지는 않았을 지하철 ‘매너손’>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뒤에서도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분명 야한 옷차림은 남성을 시각적으로 자극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인과 관계를 무시하고 원인은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봐서는 안되고, 보더라도 불결한 ‘성적 소비대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건강한 남성은 여성의 그런 옷차림을 봤을 때 대다수가 여성이 혐오스러워하는 그런 불결한 생각을 합니다. 다만 99%가 그것을 생각에서 끝내고, 행동으로 옮기는 1%가 성범죄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발언은 대다수의 남성을 잠재적인 성추행범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있었던 ‘매너손’ 논쟁과 같은 불쾌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야한 옷차림은 여성의 권리가 아닌 매스컴의 세뇌


그리고 이번 <잡년행진>에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것은,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을 마치 권리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권리일 수도 있지요. 여성만이 가진 매력, ‘아름다운 몸매’를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권리가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야한 옷차림은 분명 남성을 시각적으로 자극하며, 직접적으로 말하면 남성을 ‘꼴리게 만드는 촉매제’가 됩니다.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초미니에 탱크탑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각적으로 남성을 자극하고, ‘꼴리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부모님들이 ‘술집 여자처럼 입고 다니냐?’라며 나무라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음습하게 숨어있던 ‘야한 옷차림’이 오늘날 광범위하게 퍼지고, 일반 여성들도 즐겨 입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연예인 때문입니다. 그것도 남성들이 열광하는 걸그룹 말이죠. 예전에는 쉬쉬하며 어두운 뒷골목 사창가에나 가야 볼 수 있던 그런 차림들이, 외국의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미디어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대놓고 감상할 수 있는 볼거리가 된 것이죠. 물론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바뀐 풍조, 이와 발맞춰 좀 더 말초적인 자극을 원하는 역치상승의 시대가 온 것도 한 몫 합니다. 
 

                  <연예인의 ‘야한 옷차림’은 남성적인 시각에서 본 성상품화의 연장선입니다.>


트렌트 세터인 연예인들의 ‘야한 옷차림’은 무대에 오른 다음날 곧바로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릅니다. ‘걸그룹 xx 완벽 하의실종’ 같은 제목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런 기사를 본 일반인 여성들은 그들이 입었던 옷들을 따라 입습니다. 연예인에서 시작되어 일반인에게까지 유행하는 ‘트렌드’가 되어가는 것이죠.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일반인 여성들이 그렇게 동경하고 열광하는 아이돌을 만든 기획사 사장이나 작곡가, 안무가들은 대부분 남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남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남자를 자극할 수 있는지, 옷차림 하나, 손동작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계산합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남자를 자극하는 방법은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20대 초중반이었던 아이돌의 나이가 요즘은 점점 어려져, 최근에는 미성년자 아이돌까지도 속옷이 보일락말락하는 아슬아슬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이것이 최근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여성들이 ‘주체적인 권리’라고 생각하는 ‘야한 옷차림’은 역설적이게도 남성에 의해 주입된, 남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 수단을 가지고 여성의 권리로 대표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수 많은 권리 중에 하필이면 왜 남성에 의해 규정되어진 권리가 대표성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슬프기까지 합니다.


이런 종류의 시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이번 <잡년행진> 이외에도 아마 앞으로 이런 식의 논쟁과 시위는 많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시위를 했던 사람들의 생각도 옳고, 이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느끼고 이런 글을 쓰는 저의 의견도 동등하게 존중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자기가 손해를 입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조금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참는 경향’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권리 의식이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다른 말로 하면 개인주의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모두가 옳은 사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