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 중에는 서양음식이라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일본에서 건너온 음식인 경우가 많다.
돈가쓰가 대표적으로, 원래는 포크 커틀릿이라는 음식이 일본에 건너와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변형되었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우리가 먹는 돈가쓰가 된 것이다. 돈가쓰란 이름은 돼지 돈豚과 커틀릿의 일본식 발음인 카츠가 합쳐진 말이다.
카레 역시 마찬가지. 인도에서는 화덕에서 구운 빵인 '난'과 함께 먹지만, 일본에 건너와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변형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향신료가 가미된 인도식 카레보다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일본식 카레가 더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전파되었기에 우리가 먹는 카레는 일본식 카레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전파된 서양음식은 많이 있다.
아무래도 개화가 우리보다 빨랐고, 개화기 이전에도 꾸준히 네덜란드와 교류해온 일본이었기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전부터 서양음식이 유입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개화기에 서양문물이 전파되었지만 그 시기에 강화도 조약이란 이름으로 급속하게 일본의 영향 아래로 편입되어 서양문물의 유입은 대부분 일본을 거쳐 들어오게 되었다.
일본 역시 무작정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에도시대에는 우리와 같은 쇄국정책을 취했으며 네덜란드와의 교류도 나가사키의 데지마라는 곳 딱 한 군데만 허가해 두었다. 서양인들은 데지마를 벗어날 수 없었고, 일반인들은 허가없이 절대 서양인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양음식 전파에 있어 나가사키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일본 최초의 개항장이자 외국인 집단 거류지가 있던 나가사키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외래 문물이 많이 유입되었다.
사람이 들어오면 문화가 들어오고, 문화가 들어오면 그에 따라 음식이 들어오기 마련.
나가사키가 원조인 대표적인 음식 4가지를 이곳에서 소개한다.
현재 우리에게 친근한 외래 음식이 대부분 나가사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기에 흥미롭다.
그 첫번째 카스테라
-전래시기/ 16세기-
나가사키에 전해져 오는 외래음식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가사키 카스테라.
16세기 포르투갈과 교역할 당시 카스티야 지방의 스펀지케이크가 전해진 것이 현재의 카스테라다.
나가사키의 카스테라는 서양에서 직접 전래된 오리지널로, 개화기 시절 우리나라나 중국 등지로 전파되었다.
나가사키 어디를 가나 맛있는 카스테라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중 분메이도(文明堂)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일본 전역에 분점을 가지고 있다.
그 두번째 짬뽕
-전래시기/1890년대-
메이지시대 나가사키에 지금도 있는 중화요리점 시카이루(四海樓)의 주인 진평순이 당시 어려운 형편의
동포 유학생들을 위해 인근 화교 식당에서 쓰다 남은 닭이나 돼지 뼈, 양배추를 한데 모아 국물을 우려내고
국수를 말아 준 것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즉, 일본 토종요리가 아니라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요리다.
우리나라에서 짬뽕이라 하면 '뒤죽박죽' '잡탕'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에서도 그 의미는 같으며 양배추, 고기, 생선 등 이것저것 섞어 넣었기 때문에 '짬뽕'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만 벌건 국물에 얼큰한 맛이 나는 우리나라 짬뽕과는 달리
돼지뼈나 닭고기로 우려낸 국물에 걸쭉하고 담백한 맛이 나는 것이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세번째, 사세보 버거
-전래시기/1950년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 본토에 미군들이 상륙한다.
나가사키와 인접한 사세보는 여차하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향할 수 있는 전략상 요지로, 이곳에
미해군기지가 건설됨과 동시에 엄청난 수의 미군들이 몰려든다. 그에 따라 해군기지 주위로 미군들을 상대로한
술집, 상점, 거리가 형성되는데 그런 시대배경에서 사세보 버거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미국의 전초기지였던 사세보는 호황을 누리게 되는데 이즈음 일본인이
직접 미군부대에서 레시피를 배워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사세보 버거는 사세보에서 만드는 수제 햄버거의 총칭으로, 맥도날드처럼 하나의 레시피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가게마다 만드는 방법과 맛이 다르다. 특히 일반적인 햄버거와는 비교가 안되는 엄청난 크기로
유명한데, 부가적인 메뉴없이 햄버거 하나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마지막, 토루코 라이스
-전래시기/1950년대-
나가사키 음식의 잡탕(?)문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음식이 이것말고 또 있을까?
토루코 라이스는 카레향을 곁들인 볶음밥에 스파게티와 돈까스를 얹은, 언뜻보면 학생식당에서
파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음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상당히 맛이 있으며 토루코 라이스에
대한 나가사키 시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꽤나 미묘한 하이브리드(?) 음식인데 어째서 '터키'라는 뜻의 '토루코'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추려보면
1. 터키기원설
터키에는 '피라후'라는 볶음밥 요리가 있는데, 이 요리와 비슷해서 '터키풍 라이스' = '토루코 라이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메인요리가 볶음밥이었고, 스파게티와 돈까스는 후에 장식용으로 곁들여졌다고.
2. 터키 가교설
토루코 라이스의 내용물 중 볶음밥이 중국을, 스파게티가 유럽을 대표하는 요리이고 거기에 돈까스가 곁들여져
가교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해석에서 중국과 유럽의 중간에 있는 터키를 요리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3. 프랑스 국기 유래설
프랑스의 삼색기를 의미하는 '토리코롤'이라는 단어가 '토루코'로 축약되었다는 설이다.
볶음밥, 돈까스, 스파게티의 세가지 요리가 조화를 이루어 프랑스의 삼색기와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4. 가게명칭설
종전후~소화 30년까지 나가사키시내에 존재했던 '토루코'라는 레스토랑이 기원이었다는 설.
이상으로 살펴본 음식들은 나가사키 시내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 대부분의 문화가 그러하듯, 이들 음식들도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일본인의
개량과 독자적인 비법을 곁들인 끝에 현재는 '완전한 일본음식'으로 편입되었다.
인생의 반은 먹는 즐거움이라고 하니, 나가사키에 들른다면 위에 소개한 음식들을 한번 즐겨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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