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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로그/일본 트래블로그

원폭희생자에게 종이학을 보내는 이유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 3천여 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원래 나가사키는 예정지가 아니었으나 실제 목표였던 고쿠라(현재의 기타큐슈) 상공에 낀
구름으로 인해 목표확보가 어려워지자, 돌아오는 길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가사키는 지하철 대신 노면 전차가 발달한 도시다.
마츠야마쵸(松山町) 전차역에 내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평화공원에 도착한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이곳은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전하기 위한 수학여행 코스로 많이 찾기 때문인지, 이곳은 늘 학생 단체들로 붐빈다.

공원 입구에는 '평화의 샘' 이라고 해서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숨을 거둔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 정면으로 걸어가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청동 기념상'이 있다.




▶ 1955년 원폭투하 1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평화 기념상.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 기념상 양 옆에는 종이학을 진열한 조그만 탑이 있다.
나가사키는 물론, 히로시마의 원폭기념공원을 가도 이렇게 전국에서 보내온 종이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종이학과 원자폭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사다코와 천 마리 종이학'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0년 후, 어린 사다코는 방사능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린다.
사다코는 병이 낫기를 기원하며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기 시작하지만, 미처 천 마리를 다 접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일본 전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만다.
그리고 어린 사다코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전국 각지에서 종이학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 '평화기원'이라는 피켓과 함께 공원 주변에는 매년 일본 전국에서 보내오는 종이학이 장식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감성적인 측면이 많이 작용해 원폭=종이학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 평화공원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원폭낙하중심지에 다다른다. 사진에 보이는 검은색 기둥 500m 위에서
원폭이 터졌다고 한다. 설명글에는 과거 말뚝으로 표시해둔 폭심지의 자료사진이 남아있다.






▶ 근처에는 사다코와 관련된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사다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캐나다 작가
앨리노 코어가 쓴 작품이다. 실제로 사다코는 죽기 전까지 1300마리의 종이학을 접었지만,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644개만을 접은 채 숨진 것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원자폭탄과 종이학을 결합시킨 것은 일본인 특유의 낭만이 작용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캐나다 작가가 쓴 소설을 일본인 자신들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면은 부각시키기 위해 재빨리 차용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사키는 분명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이고, 지금도 원폭이 떨어진 오전 11시 2분이 되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이 울린다. 우리가 일본인의 낭만에 고개를 끄덕일 이유는 없지만, 다만 이 이야기가
원자폭탄 유적지에 가면 왜 그렇게 종이학이 많이 있는지에 대한 답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다만 현재도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종이학 대신 성금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었습니다.